1971년 2월
내 국민학교 졸업 및 중학교 입학기념으로 온 가족(아빠, 엄마, 나와 동생)이 외식을 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집에서는 먹기 어려운 음식을 함께 먹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것은 역사가 오래된 일종의 전통이다. 소공동에 일식 요릿집들이 있었다. '미도리'와 '남강'이란 곳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날도 아마 두 곳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무지하게 큰 원형 접시에 아빠 엄마가 먹을 생선초밥과 나와 동생이 먹을 김초밥이 깔끔하게 줄지어 정돈되어 나왔다. 장국은 당연히 따라 나왔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종로 방향으로 걸었다. 종로에는 종로서적이란 큰 서점이 있었다. 특히 종로서적은 건물 전체가 서점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임이 틀림없다. 2층인가 3층에서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된 내가 읽어야 하는 소위 '고전'을 엄마와 아빠가 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데미안'을 집어 들었고, 아빠가 '테스'를 뽑아 들었다. 두 권 모두 문고판이었는데 아빠의 양복 안주머니에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동화문고판은 시리즈로 이미 100권 이상의 고전이 발간되어 있었다. 앞뒤 노란색의 표지를 빨간색의 테두리가 두르고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데미안과 테스 중에 당연히 얇은 데미안을 먼저 읽었다. 가로 쓰기가 아니고 세로 쓰기였는데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모르는 단어들이 많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고 재미없는 이야기였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좋아하는 것인지, 데미안의 엄마를 좋아하는 것인지가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
‘나는 진정한 자아로부터 우러나온 명령에 따라서만 살기를 바랬다.’
이 문장이 주제문 같은데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이제 까까머리를 한 중학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테스가 마구간에서 겁탈당하는 장면을 읽은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면 거짓말이겠지? 테스가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다. 한참 뒤에 나온 영화에서 나스타샤 킨스키가 테스 역을 했다. 나스타샤의 청순함에 반해버렸다. 테스의 줄거리는 상당히 쇼킹했지만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이해가 어려운 것은 데미안이었다.
'진정한 자아로부터 우러나온 명령에 따라서만 살기를 바랬다'는 1971년 이후 항상 내게 수수께끼 같은 명제였다.
원문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최근에 들었다. 어디서 찾나 하고 고민하다가 ChatGPT에 부탁했다. 즉시 찾아준다. 그리고 단어 설명과 함께 문장을 해설해주기까지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두 달 배운 독일어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영어 번역문도 찾아 달라했다.
'Ich wollte nur noch nach den Geboten leben, die in mir selbst aufstigen.'
'I wanted only to live in accord with the promptings which came from my true self.'[W. J. Strachan 역]
My true self를 보고 나니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내게 다가온다.
진정한 자아가 하라는 대로 산다는 것은 진정 ‘자유인’의 삶이다.
노동하지 않고(호구를 위한 노동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도덕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야 벗어난 것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야 진정 자유인이다.
데미안에서 헤르만 헷세가 하고 싶은 말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라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평온한 어르신 많지 않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육신을 옥죄어온 도덕과 관습을 “개나 줘버려라!”하고 말할 수 있는 어르신 또한 많지 않다. ‘호로자식’이란 소리 듣는 것을 개의치 않을 만큼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해진 안온한 어르신 그렇게 많지 않다.
종교는 구원이나 영생을 미끼로 육신에 온갖 제약을 가한다.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 같은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