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크리스티나는 미모사 골프장의 전설이다.
크리스티나는 클락 공군기지 내의 조종사들을 위한 골프장(체력단련장)의 캐디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용모를 가졌다면 캐디보다 벌이가 좋은 술집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착하고 똑똑한 처녀였기에 전설이 되었다.
팬텀기 조종사였던 John은 자주 골프를 쳤다. 비행이 있는 날이건 없는 날이건 가리지 않았다.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포커 치는 것을 싫어했다.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골프장에는 캐디를 하겠다는 필리핀 처녀들이 바글바글하건만 캐디를 마다하고 직접 수동카트를 끌며 혼자 골프를 쳤다. 체력단련도 되고 멀리 보이는 피나투보 산군과 아라얏 화산 보는 것이 좋았다. 옥수수밭만 있는 일리노이가 고향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혼자 카트를 끌며 골프를 친지 6개월이 지났다. 매일 똑같은 경치가 보이는 골프코스를 걷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지루함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혹시나 하면서 어느 날 다른 골퍼들처럼 캐디를 요청했다. 강렬한 태양빛에 바랜 허름한 캐디복장을 한 가냘픈 필리핀 처녀가 모래주머니(디봇자국 수리용)를 한 손에 들고 나타났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챙이 큰 모자와 얼굴 피부 보호를 위한 마스크 사이에서 까만 두 눈동자만 크게 보였다.
골프의 시작은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목동들의 무료함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근대 골프의 시작은 영국 귀족들의 놀이였다. 귀족들은 항상 하인을 옆에 둔다. 귀족이 골프를 치면 클럽을 메고 따라다니면서 온갖 것을 다해준다. 적당한 클럽을 꺼내 건네주고, 흙 묻은 클럽과 공을 닦고, 디봇자국을 수리하고, 벙커를 정리하고, 그린의 라이를 읽어주고, 바람을 측정하고, 심지어 주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수백 년 동안 많은 하인들이 캐디일을 잘 못한다고 주인에게 수없이 맞았다. 맞아 죽은 캐디도 있다.
존과 크리스티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둘은 다 말이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존의 골프백이 실린 수동카트를 끌며 항상 존의 뒤를 따랐다. 골프를 치는데 원래 말이 별로 필요 없다. 캐디가 눈치껏 모든 것을 잘 해내면. 그리고 골퍼가 실수를 캐디탓 하지 않는다면. 캐디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면 골퍼들은 전속 캐디처럼 매일 부를 수 있다. 골퍼보다 캐디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존은 크리스티나와 일 년 이상을 골프장에서 보냈다. 결국 존은 필리핀 근무가 끝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여 공군기지가 폐쇄되고, 수년 뒤에 필리핀 당국이 공군기지 일대를 Freeport and Special Economic Zone(자유항 및 경제특구)으로 지정하고 개발을 본격화했다. 미군이 사용하던 골프장도 다시 개장하였다. 미군은 떠났지만 미군이 만든 관광인프라 덕에 많은 관광객들이 클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클락 공항으로 외국 항공사들이 취항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일본인들이, 한때는 중국인들이, 그리고 한국인들이 골프장과 카지노를 찾아 클락에 왔다.
크리스티나는 아직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는 여동생 멜도 골프장에서 일한다. 술집이나 식당 외에는 여자들의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날 존이 미모사 골프장에 나타났다. 20년이 지났지만 존을 기억해내는 캐디도 몇 명 있었다. 모든 캐디가 깜짝 놀랐다. 골프장에서 일하던 크리스티나가 캐디가 아니라 존의 동반 골퍼의 복장으로 존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크리스티나는 전설이 되었다. 존과 크리스티나는 각각 수동 카트를 끌고 캐디없이 골프를 쳤다. 피나투보 화산군이 석양에 붉게 물들 때까지...
존은 은퇴했다. 아니 소위 Veteran(참전군인)으로 제대한 것이다. 그리고 한 때 근무했던 클락으로 돌아왔다. 콘도미니엄을 얻어 크리스티나와 함께 산다. 그리고 콘도미니엄 루프탑 레스토랑을 인수하여 크리스티나 동생 멜에게 운영을 맡겼다.
15층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멜은 매일 피나투보를 본다.
신데렐라는 동생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