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를 앞두고 있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분위기가 무겁다. 40과 50은 어감적으로나 그 숫자의 무게감이나 많이 다르다. 어렸을 때 50대 사람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았는 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무대로 치면 가장자리에 있다가 금새 퇴장할 사람들. 내가 그 나이가 되다니.
50대는 체력이 있지만, 몸이 바스라지는 것을 느낀다. 스스로 동안이라고 느꼈던 사람도 노화에 가속도가 붙는다. 머리가 가늘어지고, 손톱이 자주 부러지며, 노안이 온다. 가끔 전신 거울을 보면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뭉텅 빠져있다. 친구를 만나면 확실히 느끼는데, 음식점이나 카페에 자리 앉기 전에 약속이나 한듯이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이다.
이런 신체적인 징후를 느끼면 현실을 깨닫는다.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10년이라는 것.
여기 두가지 알약이 있다. 달달한 알약과 쓴 알약이다. 최근 '세이노의 가르침'이 10주연속 베스트셀러다. 알약도 트렌드가 있어서 몇해전까지만 해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달달한 알약이 인기가 많았다.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 사회가 문제다. 세상이 미쳤다. 스스로를 그만 채찍질해라. 자유로워지고, 일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한 스님은 이렇게 위로해 놓고 본인은 부를 축적했다.)'
다수가 이런 위로에 취해있을 때 몇몇 사람은 묵묵히 자기 길 갔다. 그리고 펜데믹 시기에 자산이 뻠핑하는 경험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고단함 보다 박탈감이 더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50은 신체적으로 무너지지만, 몇가지 자산이 있다. 첫번 째가 상처다.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고, 인생 반이나 살았는데 이게 뭐야 현타 느끼는 경우도 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좋은 복수란 무엇일까?
직계 가족,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세상은 내가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글로리같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은 통쾌하지만, 제일 등급이 낮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먹고사느라 글로리식 복수는 불가능하다. 현실적인 복수는, '잘 사는 거'다.
두번 째는 스스로 판단할 만한 데이터가 쌓였다. 달달한 위로가 맞는지, 쓴 소리가 맞는지 본인에게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흔들리지 않는다. 불혹 다음에 지천명은 예나 지금이나 맞는 수순이다. 나에게 불혹이란 남성 호르몬이 떨어지다 보니 만사에 관심이 없어졌는데,그래도 남는 하나가 있는데 그게 지천명.
주의할 것은 이것이 엉뚱하게 작동하면 장년의 똥고집이 돼버려서 추하다. '당신도 맞다'라는 정신적 패치가 필요하다. 사실 누가 맞건 틀리건,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 진리임을 깨닫는다.
또 하나, 시간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다. 지난 십년이 시속 단위로 달렸다면, 앞으로는 초속으로 나아간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굵직한 일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재취업, 건강관리, 가족간 유대등.
몇몇 60대 선배들에게 자문해본 결과 몇가지 특징을 들었다. 항상 약속 장소에 늦게 왔던 친구가 모두 미리 와 앉아있다.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일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것으로 따시키는 분위기는 아니다. 국민 연금 받는 친구나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친구나 잘 어울린다. 하지만, 골프 가려는데 라운드피가 없거나, '내가 낼께' 한 번 얻어먹었는데, 이번에 내가 낼 수 없다면 곤란한 정도다. )
시간이 없다. 하지만, 천천히 간다. 중년은 겉으로는 온화하게, 안보이는데서는 좃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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