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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Nov 04. 2015

7화. 아이들과 함께 비엔날레 시작을 알리다  

아트페스티벌 이야기 ⑦ 우리는 촛불입니다.

콕스바잘에서는 수도에서 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근처 모스크에서 울리는 엄청난 아잔 소리(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가 이른 아침잠을 깨웠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개 짖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조용해졌다. 곧이어 낯설지 않은 아침밥 냄새가 났다. 오랜 여행 끝에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이른 아침잠을 깨운 불청객들이 밉지가 않았다. 콕스바잘에서는 내내 긴 하루가 이어졌다. 방글라데시로 이동 중 행사 공식 명칭이 변경했다는 소식에 이어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야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가되고 변경된 프로그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종이접기 워크숍 콕스바잘 비엔날레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종이접기 워크숍  ⓒ DAPLS

비엔날레로 변경되면서 프로그램에도 변동사항이 많아졌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진행하는 종이접기 워크숍이었다. 워크숍 일정이 9월 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행사 전, 프리 프로그램(Pre-program)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원래 하루 일정으로 준비했던 워크숍이 4일로 늘어난 것이다. 워크숍을 단순히 일회성 체험 행사로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작품으로 비엔날레 동안 종이접기 갤러리를 열기로 했다. 워크숍을 통해 처음 미술을 접한 아이들도 비엔날레의 참여 작가의 한 구성원으로 이름을 올리게 하자는 배려였다. 종이접기에 참여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인형극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도 워크숍 기간에 자신이 만든 인형을 가지고 비엔날레 기간에 공연을 올리게 된다.


종이접기 워크숍은 사전에 준비했던 "yes"라는 주제에 콕스바잘 아이들이 접하기 쉬운 주제인 "바다 꾸미기, 정원 꾸미기, 모빌 만들기" 등을 추가해 총 4번의 워크숍 일정을 만들었다. 각 주제에 맞는 종이접기를 배우고 완성된 작품을 활용하여 조별로 공동 작품을 완성해가는 형식으로 진행해 갤러리를 열기로 했다. 워크숍은 비엔날레가 열리는 공립도서관이 아닌 근처에 있는 콕스바잘 중학교에서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5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이 됐다. 9월 6일 워크숍 첫날, 인형극팀이 수도에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우리는 인형극 워크숍을 신청했던 학생 30명까지 포함하여 총 60명이 넘는 학생들을 데리고 첫날 워크숍을 진행해야 했다.

▲ 종이접기 워크숍 단체사진   ⓒ DAPLS

좁은 교실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빽빽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콩나물시루를 연상시켰다. 설명은 몇 번을 반복해야 모두에게 전달됐다. 아이들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아이들의 열기로 교실은 금세 용강로처럼 뜨거워졌지만, 종이가 바람에 날려서 선풍기를 틀 수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더워서 불평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 콕스바잘 비엔날레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종이접기 워크숍  ⓒ Orchid Chagma

다행히 미술을 공부하는 2명의 학생이 자원봉사자가 붙어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이 맞으면서 수월해졌다. 예상했던 인원보다 두 배가 늘어난 학생들을 데리고 '잘 진행할 수 있을까'라는 우리의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너무도 잘 따라왔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자, 조별로 완성된 종이접기 작품을 이용해 바다를 꾸미도록 했다. 준비한 색연필과 풀, 여분의 색종이를 조별로 나눠줬다. 예상 인원보다 학생들이 많아, 이리저리 색연필과 풀이 날아다녀 정신없었다. 완성된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똑같은 색종이로 만든 것이 맞느냐는 의심이 생길 정도로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완성된 아이들의 작품을 보고 감동해 우는 표정을 짓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뿌듯해했다. 서로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했다. 벌써 내일 수업 기대된다며 빨리 내일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마무리하니 시간은 저녁 8시.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 종이접기 워크숍 받고 집에서 연습을 했다며 가지고 온 작품  ⓒ DAPLS


암흑 속에서 시작한 첫 회의

아이들과의 첫 번째 워크숍을 마치고 나자 어론노 다다가 밝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방금 시장에게 승인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행사 포스터가 나와 우리가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거리 곳곳에 포스터 작업도 마친 상태라고 했다. '조금 더 일찍 승인을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지만, 드디어 승인을 받았다는 안도감에 오래간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게 준비가 됐다.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할 일만 남았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다다와 함께 공립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공립도서관은 예정된 완공날짜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여기저기 건물 곳곳에 공사에 사용하는 자재들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고 벽돌과 모래 등이 앞마당에 쌓여 있었다. 오전보다는 깔끔해지긴 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오늘을 제외하면 단 3일. 모든 게 준비되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곳에서 행사를 치를 수 있겠냐는 의문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수도에서 예술감독 라집과 함께 사람들이 도착해있었다. 콕스바잘팀과 다카팀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우리 두 명, 첫 회의에 모인 사람은 총 15명. 국제 아트비엔날레 콕스바잘 2015 첫 회의가 시작됐다. 정전이라 불이 없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오늘 승인을 받은 것과 워크숍을 시작으로 이미 행사가 시작되었다며 서로 자축의 박수를 치며 전기가 없는 어둠 속에서 회의가 시작됐다. 콕스바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고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파트너들이 늘기 시작했고 조롱과 의아함이 질투와 부러움으로 바뀌고 있다며 행사를 시작하는 소감을 전하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어론노가 콕스바잘에서 진행해온 아트페스티벌을 발판 삼아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기회를 나누기 위해 저희는 더 큰 꿈을 그릴 것입니다. 여기 모인 15명이 우리가 모두 이 축제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곧 이곳에 모이는 예술가들,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모인 우리는 촛불입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을 위해 촛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밝힌 촛불이 점점 번져나가 콕스바잘을 넘어 방글라데시 곳곳을 밝힐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예술감독의 짧은 인사말에는 힘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오래된 동지를 만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의문은 사라지고 이들과 함께라면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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