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엔슬러의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는 가정폭력, 성폭력, 내전, 빈곤, 사회적 소외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폭력과 고통을 다룬 이브 엔슬러의 글 모음집이다. 이브는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소외된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을 촉구하며,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연대와 깊은 사유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글쓰기는 자살과 광기로부터 나를 구원했다. 적어도 그 광기로 무언가를 만들게 해 주었다. 나의 글쓰기는 증인이었다. 고발이며 고백, 발굴, 구원이었다. 단어를 나열하는 일은 일종의 벽돌 쌓기였다.” p.22
그는 글쓰기가 “자살과 광기로부터” 벗어나는 길로 여겼으며, 자신의 글쓰기를 고발이자 고백, 발굴, 구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과 세상의 슬픔을 기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폭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의 도구로 활용했다. 이는 문학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다시금 환기한다.
문화가 바뀌지 않고 가부장제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같은 쳇바퀴를 돌게 된다. 이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좀 더 진보적인 방식을 상상해야만 한다.
p.187-188
저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우리 영혼을 파괴”한다고 강조하며, 특히 가부장적 구조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의 체계적 본질을 드러낸다. 그는 이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로 제시하며, 강력한 연대와 실천을 촉구한다. 그는 연대를 통해 인간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이 책은 단절된 우리가 다시 연결되기 위한 더 깊고 넓은 사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p.177
남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통제권과 우위를 재천명하고 여성들이 힘들게 얻어낸 권리를 빠르게 삭제한다. 전 세계에서 가부장제는 바이러스 확산을 최대한 활용해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여성을 향한 폭력과 위협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남자들은 통제자이자 보호자를 자처하며 이에 개입한다.
p.194
잘못된 장소에 있는 잘못된 몸. 돌봄과 휴식이 필요한 몸들이 단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되었다. 이내 그들의 이야기와 이름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그녀들의 몸을 말하고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자.
p.312
생존자들은 종종 ‘이제 그만 가해자를 용서하고 남은 삶을 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합니다. 저는 우리가 용서를 사용하는 방법이, 진정한 용서가 있기도 전에 어떻게 해서든 반성이나 이해처럼 꼭 필요한 과정을 건너뛰는 세태가 무척 우려됩니다. 많은 종교에 있는 고해라는 의식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받는 일을 말해요. 여기에서 용서는 피해자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용서는 일면 명령처럼 느껴지며 충분한 소통과 사과의 행위 없이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죄책감,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해방시키지 못하는 의미 없고 텅 빈 형식일 뿐입니다.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브 엔슬러 지음 | 푸른숲, 2024
에세이 | 410쪽
#사유 #글쓰기 #고통
책계정 | @boi_wa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