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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인 Oct 26. 2024

나를 마주하는 일 by.자연

언니 그거 아세요?    

 

제가 글을 쓰는 시간 만큼이나 좋아하는건 언니의 “우리 다음 글은 뭐에 대해 쓸까요?” 하는 물음이라는 걸요. “그러게요, 이번엔 뭘 쓸까요?” 제가 이렇게 되물으면 우리만의 은밀한 작당모의가 시작되죠. 함께 글 쓰는 궁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하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언니와 하루동안 짬짬이 카톡으로 수다를 떨기도 하지만 글에 대한 대화 만큼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난히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적어도 글 이야기를 할 땐 팔꿈치로 유모차를 밀면서 오타가 가득한 문자를 보내거나 핸드폰을 뺏으려고 덤벼드는 미엘의 단단한 머리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급하게 메시지를 쓰진 않으니까요.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미엘은 저를 너무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질 않아요. 다양한 높낮이로 “마마!” 하고 부르는 작은 입과 연두빛같은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들을 때마다 행복하긴 합니다만 요즘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입니다. 
 
 1. (두리번거리며) “마마?” : 엄마 어딨지?
 2. (뭔가를 들고오며) “마마” : 엄마가 해줘 

3. (팔을 뻗으며) “마마” : 안아줘 
 4. (내 핸드폰을 뺏으며) “마마” : 나한테 집중해줘

5. (베란다를 가리키며) “마마 부릉부릉” : 날 안고 버스를 구경시켜줘 

6. (엉엉 울며) “마마” : 배는 고프지만 엄마가 날 두고 밥차리는 건 싫어 

7. (아빠에게서 등을 돌리며) “마마” : 엄마가 안아줘 
 8. (달려오며) “마마!!!!!” : 엄마다!!!!     


언니도 익숙하시겠지만 뭐 이런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답니다. 그 중 애 저녁은 차려야겠는데 도무지 떨어지질 않으려하는 5번은 참 난감합니다. 혼자 놀고 있는 틈을 타 얼른 일어나 냉장고에 준비해 놓은 것들을 꺼내고 있으면 우다다다 달려와 마치 버림이라도 받은 듯 제 다리를 부여잡고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세상 서럽게 울거든요. 어쩔 수 없이 한 팔로는 미엘을 안고 남은 한 손으로 저녁을 준비하곤 하는데 오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주제에 끝내 엄마를 독차지하고야 말았다는 듯 어찌나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안겨있던지 웃겨서 혼이 났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소통이 된다는게 참 재밌고 신기합니다. 아직 미엘이 말할 수 있는 단어는 마마, 빠빠, 부릉부릉, 부우(버스), 다!(네!)가 전부이긴 하지만 미엘의 표정과 단어의 강세와 미묘하게 다른 끝처리와 손짓을 통해 저와 남편은 미엘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도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관찰력이 좋은 남편이 먼저 캐치하고 저에게 공유해줄 때도 많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동안 저의 남편 알피는 제 글에 자주 깊게 등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외국인이라고 하면 다들 물어봐요. “문화차이가 있을텐데 그런 갈등은 없으세요?” 사실 저도 남편도 각자의 고유한 문화 배경이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 수년째 근무를 하다가 만났기 때문에 서로 어느 정도 블랜딩이 되어있는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요. 애초부터 서로의 이국적인 면모에 끌리기도 했을거고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디폴트를 전제로 하다보니 웬만한 사소한 것들에는 크게 예민해지지 않더라구요. 실제로는 문화차이라기보다는 성격차이에서 오는 부분일지라도 그냥 그러려니 포용하게 되고 오히려 매력을 느끼게 되는거에요. 네, 함께 육아를 하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저와 남편이 함께 육아를 해오며 와 너랑 나는 정말 다르구나 하고 느꼈던 점을 일일이 설명하자니 복잡할 것 같아서 간단히 표로 만들어보았습니다. 가볍게 투닥거렸던 주제도 있고 서로 삐쳐서 반나절동안 사이가 어색해졌던 주제도 있습니다.     



                    

써놓고 비교해보니 저는 호르몬이 날뛰고있는 걱정투성이 초보엄마의 표본이고 알피는 애 셋은 키워본 사람 같네요. 저와 알피가 각각 미엘의 낮잠을 재우는 과정을 묘사했던 일기의 한 부분도 발췌해드릴게요. 일년도 더 전에 쓴 기록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왜 미엘이 돌 전까지는 아빠만 편애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나 : 아기가 하품을 두 번하고 눈을 비빈다. 졸리다는 신호다. 기회는 지금이다. 아기를 바운서에서 신속하게 들어올려 팔에 안고 토닥토닥 쉬쉬해서 빠르게 재우기를 시도한다. 아기는 물론 치대고 땡깡을 부리며 운다. 굽히지 않고 쉬쉬 소리를 내다보면 아기가 갑자기 잠에 든다.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침대에 눕히고 잘자 속삭인다음 혹여나 깰까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온다. 총 10분 이내에 아기를 재운다. 

알피 : 아기가 졸린 신호를 보낸다. 천천히 아기에게 들려줄 자장가를 틀고 아기를 기저귀 갈이대에 올려놓고 대화를 한다. 그냥 빨리 재우지 무슨 얘기를 하냐고 했더니 이제 너를 재워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거란다. 그러면 미엘은 자기가 왜 자고 싶지 않은지를 열심히 옹알거리고, 그걸 들어준다음에 왜 그래도 자야하는지를 설명해준단다. 그 과정만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고나서는 아기를 세워서 안고 자장가에 맞춰 부드럽게 몸을 흔들며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아기에게 말을 걸면서 쓰다듬는다. 미엘은 뭐라뭐라 계속 옹알이를 하고 알피는 작은 소리로 대꾸를 해준다. 옹알이와 스페인어의 조합이라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것도 10분 이상 걸린다. 그러다가 아기가 잠투정을 하느라 앵 하고 울면 그때 옆으로 잠시 안았다가 잠들면 침대에 눕히고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으며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확실히 덜 울고 평화롭게 잠드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난 저렇게 하루 네 번은 못해.. 
      

꼼꼼하면서도 여유있고 인내심이 강한 알피는 멕시코인 특유의 낙천주의와 서두르지 않는 기질을 타고났고 목적지 자체보다는 여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제 자신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육아 초보 시절에는 제 안의 불안이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나 자신’을 삼켜버리고 마음대로 조종대를 잡더라구요. 인사이드아웃 2에서 불안이가 라일리의 머릿속을 미친 듯이 휘저으며 제어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바로 그 장면이 신생아 육아 시절 저의 모습의 요약본입니다. 수면부족과 싸워가며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매일매일 저의 바닥을 마주하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알고보니 나는 비좁고 쪼잔하고 잘 깨지는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어그러진 마음과 예민한 신경을 무기삼아 알피를 속상하게 만들었던 적도 여러번이구요.      


미엘을 재우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이 터져나왔던 밤이 있습니다. 제가 훌쩍이는 소리가 컸는지 거의 잠에 들었던 아기가 몸을 반쯤 일으켜 제 곁으로 다가오더니 머리를 갖다 대고 비비길래 얼른 눈물을 닦고 엉덩이를 토닥거려줬어요. 그랬더니 미엘이 제 팔에 자기 손을 올리더니 저를 똑같이 토닥토닥 해주는 거에요.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요. 얼마나 사랑스럽고 마음이 벅차오르고 미안하고 온갖 감정이 다 들던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꺼이꺼이 울었지뭐에요.      


결국 육아라는 건 나 자신을 조우하고 다시 알아가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 알피만큼이나 저를 지탱해준 다른 한 축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낯설고 고단한 초보 육아를 하며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이 극에 달할 때면 가장 익숙한 글쓰기의 공간으로 도망치듯 달려들어와 부드러운 이불에 온몸을 묻듯 안심할 수 있었어요. 마음은 차차 나아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글은 쓸 수가 없었던 하루하루를 지나올 때 쯤 공원에서 언니와 단우를 만났습니다. 어쩜 그토록 싱그러운 초여름이었고, 언니였을까요. 우린 어쩜 그렇게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언니와의 작고 무해하고 견고한 이 작당모의가 벌써 일곱 번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매번 해냈구요. 수신인이 있는 글이라 더 좋았습니다. 그 수신인이 언니여서 다행이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언니여서 감사하고 정말이지 언니의 글을 읽는 매 순간이 너무 좋았다는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아참, 미엘의 ‘마마’ 시리즈에 또 한가지 버전이 있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함께 누워 잠을 청하면서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마마”입니다. 유일하게 어떤 대답이나 액션을 요구하지 않는 미엘의 나지막한 아홉번째 “마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사랑해’인 것 같습니다. 돌아누운 작은 등을 쓰다듬으며 이 작은 존재에게 넘치도록 열렬히 받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확장되고 깊어지는 나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가영 언니, 아무래도 우린 오래오래 글을 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작당모의를 기대하며
자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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