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이 되면 우리나라는 수능시험을 치른다고 난리다. 시험 당일, 시험장에 들어서는 수험생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보인다. 이 시험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그들이 비장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다. 시험 이후, 소위 SKY에 들어간 사람은 평생 명문대생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시작하여 취직할 때, 결혼할 때 등등 인생 전반에 걸쳐 학벌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연, 지연, 혈연의 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 명문대라는 곳을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거침없이 결정하는 수험생들이 넘쳐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은 대학을 꼭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야 한다면 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남들이 모두 대학에 가니깐 자기도 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은 나와야 제대로 취직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 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이 당신을 대학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가?
대학은 자신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그 전문성을 강화, 발전시키기 위해서 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조력하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이 기준을 최우선에 두고, 대학에 가지 않는다.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키워나가겠다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보다 이름 있는 대학, 보다 내세울 만한 대학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적성과 꿈은 뒤에 두고, 대학의 이름만 쫒아 대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획득한 각 대학의 라벨로 평생을 우려먹는다.
세상이 실력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사회라면 대학 이름 따위가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조직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사회라면 학연과 지연에 전혀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자기 스스로 지독한 독학을 해서 얻어낸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무슨 대학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은 현실 때문에 대학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바로 그러한 사회가 '학벌에 대한 열등병'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수학교사가 되기 위해 수학교육과를 갔고, 대학을 마치고 임용고시에 통과해서 수학교사가 되었다면 이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성공담을 제자들 앞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가 SKY를 나오지 못하고, 수도권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다. 그토록 원하던 수학교사가 되었는데 자신의 출신학교가 학생들이 동경하는 대학이 아닌 삼류 취급을 받는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말을 못 하는 것이다. 그는 '학벌에 대한 열등병'에 걸려서 진정한 성취가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당신 자신에게 한 번 질문을 던져봐라. ‘내가 학벌에 대한 열등병에 걸렸나?’를 물어봐라. 반대로 ‘내가 학벌에 대한 우월병에 걸렸나?’도 물어봐라. 이쪽이든 저쪽이든 둘 다 불행하다. 그중에서도 전자라면 더 심각하다. 후자는 사회가 형성해준 분위기 때문에라도 덤으로 떨어지는 보이지 않는 이득들이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전자는 그것도 없는데 사는 동안 마음만 슬프고, 불편하게 만든다. 평생 자신을 스스로 이류 또는 삼류 취급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식들까지도 괴롭힌다. 일류대에 들어가라고 소중한 피붙이들을 채찍질한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세상의 구조적 모순에 휩쓸려, 사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힘써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깨우쳐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단단한 자신의 신념을 형성해서 세상에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소중한 인생이 ‘학벌에 대한 열등병’과 같은 것들에 의해 불행해지지 않는다. 마음의 병은 약을 먹는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 그 병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고쳐진다. 결국, 그 작업은 자기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수술로 병을 고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게 자신에게 집중하고, 올바름을 추구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