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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야 행복하다

우리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남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나의 기준과 생각이 그만큼 견고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차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 정선주, 『학력파괴자들』, 프롬북스, 2015, p251 -


얼마 전, 정선주가 쓴 『학력파괴자들』을 읽으며, 수년간의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얻어진 답은 '순응'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인정하는 가치가 자신의 것인 양 믿고 살아가도록 우리는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음에도 사회가 좋다고 제시하는 가치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 아닌 자신으로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삶을 산다.  


순응하는 법을 탁월하게 익힌 이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대로 사느라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기 내면의 자아와 충돌하는 삶을 살고 있어도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순응하는 것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져서 자기 내면이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어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참고, 또 참는다.


그렇지만 자기 내면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인지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불편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시기마다 정확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침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순응하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은 이 지침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불편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자아는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자기 내면의 울림에 솔직하게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깐 자아는 피폐해져 간다. 삶은 무기력해지고 열정적인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살고는 있는데 진짜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남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의 부속물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척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고 불편함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배제하고, 벗어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참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순응하며 인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다. 오랜 학교 교육이 낳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편함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방치하다 보면 우리의 자아는 점점 피폐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자신의 삶을 사는 것과는 더욱 멀어진다. 자신답게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을 잡고 움직이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에 솔직해지고,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자신에게 충실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불편함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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