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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함과 똑똑하지 아니함

자녀가 없는 C는 5살 연하의 아내인 H와 같이 산다. C는 회사에서 퇴근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바로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그는 혼자서 저녁식사를 하고, 3시간 정도 책을 읽는 생활을 근무한 날에는 거의 항상 한다.


C는 되도록 약속을 휴일에 잡아서 자신의 생활패턴이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퇴근 후에 약속이 있거나 다른 일이 생기게 되면 사전에 H에게 그 내용을 알려준다.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한 C는 퇴근 후 친구를 만나서 술자리를 가진다. 사전에 H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휴대폰 문자메시지 또는 통화와 같은 연락도 없었다. H는 C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C가 퇴근 후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벌써 집에 도착해야 할 C가 집에 오지를 않는다. H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읽던 책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건가!’


H는 우선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기다린다. 한 시간이 지나니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한 마음은 불안한 마음으로 변한다.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냐!’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C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C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H의 불안한 마음은 점점 더 커져서 손이 떨릴 정도가 된다.


몇 분 후, 문자메시지가 온다.


“지금 버스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또 몇 분 후,


“오늘 갑작스럽게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같이 술 한잔 했어.”


또 몇 분 후,


“○○○에서 버스 탔어.”


이렇게 C는 문자를 나누어서 보낸다. H는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도 밖에 있는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 H는 C가 집에 오면 말하기로 마음먹고 기다린다. 얼마 후, C가 집에 도착한다. 술을 마셔서 얼굴이 약간 붉으스레 하지만 취한 것 같지는 않다. H는 C에게 연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차분히 따지기 시작한다.


C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한다.


“퇴근하는 길에 갑작스럽게 대학교 때 친구를 만나게 되었어. 같이 술 한잔하면서 옛날이야기 좀 하다 보니깐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나는 당연히 원래 집에 오는 시각에는 집에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네.”


H는 말한다.


“그러면 화장실 갔을 때라도 문자를 줘야지 내가 걱정하잖아! 그리고 내가 전화했을 때 전화를 못 받아서 나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면 한 번에 당신 상황을 적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지 아까처럼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되겠어. 나 약 올리는 거야!”


C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한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니깐. 뭐 그럴 수도 있지 자꾸 따지냐. 내가 평소에 이런 적 있었어? 없잖아? 그리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면 되었지 뭘 한 번에 보내. 버스 타지도 않았는데 버스 탔다고 보낼까.”


H는 더 말해봐야 자신의 입만 아프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가 버린다.




당신은 '똑똑함'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을 많이 읽어서 일반적인 상식을 많이 알고 있고,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똑똑함'이라는 것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교양의 수준으로 가늠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함'은 사람이 타자와 맺어가는 인간관계 안에서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관계 안에서의 행동력이 '똑똑함'과 연결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C는 똑똑하지 못한 언행을 하였다. 평소에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아내인 H에게 신뢰를 쌓아 온 C이지만 한순간에 그가 쌓아온 신뢰는 무너졌다.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전에 그 사실에 대해서 아내인 H에게 알려주었어야 했다. C가 그렇게 행동했다면 H가 걱정하는 시간도, 분노하는 시간도 없었을 테니 가장 상수의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나 C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친구와 술을 마시던 중간에라도 잠시 시간을 내어서 H에게 연락을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C는 술자리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C는 걱정과 분노로 H의 마음이 불편하도록 만든 것이다. 아울러 C는 생각을 하지 못해 H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술자리가 끝나고 나서는 최대한 빨리 H에게 연락을 하여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었다면 H가 분노를 느끼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C는 집에 와서 H와 대화를 할 때 고분고분하게 H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C는 자신이 평소에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고,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데 무엇을 그렇게 따지고 있느냐는 식으로 언성을 높이며 H를 대한 태도는 C가 똑똑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자신을 걱정하느라 힘들게 마음을 쓴 아내의 심정을 헤아리고, 설사 H가 날카로운 말투로 C에게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고분고분한 자세로 그 말을 들으며, 아내의 마음을 보듬는 태도를 가졌어야 한다.



똑똑하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표출되는 지혜롭고, 현명한 태도이다. 어떤 일을 상대방이 감동을 받도록 눈치 있게 처리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시쳇말로 "그 사람 참 센스 있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은 똑똑한 사람에게도 붙여줄 수 있는 표현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지금 어떻게 해야 이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언행을 하는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고, 상황에 따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도 그때그때마다 자신이 취해야 할 가장 적합한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똑함'은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해서 전문지식과 교양을 쌓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똑똑함'은 나 아닌 타자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는 연구를 하고, 그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올바른 언행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할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똑똑함'은 지식의 수준과 정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혜로움을 실천할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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