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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한국 아들이 왔습니다."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날아 다카마쓰 공항에 도착했다. 딱 일 년 만에 방문한 아내의 고향이었다. 일본 가가와현, 사누키 우동의 본 고장인 이 곳이 이제는 편안하게 느껴진다. 마치 나의 고향에 방문한 것처럼,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가슴에 퍼지는 반가움에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2018년 12월 25일, 우리 부부는 약 1년 만에 가가와현을 방문했다

 

이번에도 장모님께서는 우리 부부를 마중 나와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おかえり(오카에리)"라고 인사를 하신다. "어서 와!"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셨지만 그 말씀 안에서 나는 1년 동안, 우리를 그리워했던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공항에서 처가댁으로 향하는 길, 아내와 장모님은 가가와의 방언이 섞인 말들로 끊어지지 않는 수다의 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웅성웅성~,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일본어의 향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나는 여기가 일본이며, 아내의 고향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이제는 일 년에 한 번, 처가댁을 방문하는 것은 우리 부부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바빴던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해를 힘차게 준비하는 정화의 시간을 우리는 일본의 처갓집에서 갖는다. 지난 한 해동안 목표로 했던 일들은 얼마나 이루었는지를 살피고, 다음 해에는 무엇에 집중할지를 계획하는 지극한 순수의 시간을 우리는 그곳에서 가진다.


처가댁에 오기 몇 달 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뵐 마음에 들뜬 우리 부부만큼이나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우리와 함께할 날들을 고대한다. 일본인이지만 다문화가정의 일원으로 한국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큰딸의 피로를 보듬고, 그녀의 남편으로서 성실하게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큰사위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일본의 부모님은 우리 부부를 오래전부터 기다린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우리 부부를 위한 극진한 환영 코스를 마련하셨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손맛이 배인 처갓집의 가정식 그리고 일본 문화에 생소한 한국 사위를 위한 맞춤 문화 체험과 가족여행을 올해도 두 분은 준비하셨다. 일본간장 맛이 깊게 묻어나는 야끼소바에서부터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로 푸짐하게 차려진 스키야끼와 오뎅탕까지 …, 두 분이 만들어 주시는 음식 하나하나에는 한참 동안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했을 딸에 대한 애정과 일본의 가정생활과 문화에 적응 중인 사위에 대한 배려가 깊게 서리어 있었다.   


장인어른은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고베시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던 한국 사위의 바람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저번의 히로시마에 이어 이번에는 고베를 가족여행의 목적지로 삼으셨다. 우리가 처가댁을 방문하기 몇 달 전부터 고베시를 여행하기 위한 여행 계획을 마련하셨고, 숙소도 예약을 하셨다. 당신은 좀 불편하시더라도 한국에서 온 사위가 더 깊게 일본문화를 느끼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일정을 구성하셨다.              


2018년 12월 29일, 우리 가족은 배를 타고 고베시로 향했다

 

그동안 일본을 여행하면서 하늘과 육로로만 이동해 보았던 사위를 위해 장인어른은 바다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고베에서 처가댁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고 올 승용차를 싣고, 고베로 향하는 대형 선박을 타는 경험은 일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다카마쓰항에서 고베항까지, 우리 가족을 실은 여객선은 느림의 미학을 펼치며, 세토내해(瀬戸内海)*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장인어른은 사위에게 고베행 배를 타고 가야지만 볼 수 있는 아카시해협대교(明石海峡大橋)*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자동차로 아카시대교를 지나가면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그것의 감동을 사위가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하셨던 것이었다.


또한, 고베에 도착한 이후의 일정에는 내가 언젠가 아내에게 고베를 여행하게 되면 이것은 꼭 하고 싶고, 먹고 싶다고 한 것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고베항에서의 관람차 탑승 그리고 고베시의 차이나타운인 난킨마치(南京町)를 방문하고 한국과 비교해보고자 했던 나의 바람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인어른은 아내와 한 번씩 통화할 때면 사위의 희망사항들을 딸에게 물으시고, 여행 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셨던 것이었다.


2018년 12월 29일, 우리 부부는 고베항의 야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고베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처갓집을 향해 떠나기 전에 일본의 전통주 제조과정을 알 수 있는 곳을 방문했다. 술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도구에서부터 술의 제조공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사실 이곳은 술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을 방문해서 내가 일본문화를 깊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장인어른의 대안책이었다. 연말이라 고베시의 술 제조과정 체험장들이 거의 쉬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가게 된 곳이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일본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전통주 제조과정을 살펴보았던 시간은 단순하게 일본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 이상의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장인어른께서 마련해준 시간을 가지면서 아버지의 속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식이 더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자식이 더 좋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나는 장인어른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위인 나를 남의 집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해주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면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두 분 모두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시간 그리고 현재도 느끼는 풍성한 사랑은 내가 두 분의 아들이며,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에 의심할 필요가 없도록 하였다.


2018년 12월 30일, 우리 가족은 일본의 전통주 제조과정을 살펴보았다


일본에는 장인어른, 장모님이라는 말이 없다. 사위라고 하더라도 일본에서 아내의 아버지를 부를 때는 아버지(おとうさん, 오토-상)라고 부르고, 아내의 어머니를 부를 때는 어머니(おかあさん, 오카-상)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이 좋다. 굳이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장인과 장모로 구분해서 부르며, 마음의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인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일본에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 단순하게 결혼에 의한 형식적 가족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공유하는 진짜 가족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일본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시는 무한한 사랑 덕에 치열하게 보냈던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처가댁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편안하다. 일본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가정식을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어서 즐겁고, 일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를 가족 모두가 함께 방문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일본에 있는 처갓집이 우리집처럼 느껴지는 것이 좋다. 그래서 다시 방문할 미래의 그날을 기다리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지금이 기쁘다.



지금 이 순간, 상상해본다.


"아버지!, 어머니! 한국 아들이 왔습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얼굴에 기쁜 미소를 한 가득 품으며


"おかえり(오카에리)"


라고 응답하시는 일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려본다.



                        

* 세토내해(瀬戸内海) : 혼슈 섬과 시코쿠 섬, 규슈 섬 사이의 좁은 바다를 말한다. 야마구치현, 히로시마현, 오카야마현, 효고현, 오사카부, 와카야마현, 가가와현, 에히메현, 도쿠시마현, 후쿠오카현, 오이타현이 세토 내해와 접한다.

(출처 : ”세토 내해”, 위키백과, 2019년1월8일,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D%86%A0_%EB%82%B4%ED%95%B4)


* 아카시해협대교(明石海峡大橋) : 일본의 아카시해협을 가로질러 효고현(兵庫縣) 고베시(神戶市) 다루미구(垂水区)와 아와지섬(淡路島) 아와지시(淡路市)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懸垂橋)이다.

(출처 : “아카시해협대교”, 인터넷 두산백과, 2019년1월8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21440&cid=40942&categoryId=3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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