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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댁이 일본에 있습니다."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진짜 한일부부가 되다


우리 부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 가가와현으로 향했다. 아내의 고향,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처가댁이 있는 그곳으로 우리는 올해도 휴가를 내어 방문했다. 회사에서 연말과 연초를 붙여서 평소보다 조금은 길게 휴가를 내면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일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평소와는 다른 휴가의 길이만큼이나 그들의 관심도 깊어진다. 


제법 많은 신입사원들이 입사한 올해는 작년보다도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선배님,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선배님, 올 한해 고생하셨다고 푹 쉬시나 보네요. 어디로 가세요?", 이제 갓 입사하여 수습 과정을 거치고 있는 신입사원들은 회사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들과 함께 일할 동료인 나에게도 관심이 많다. "처가댁에 다녀오려고 해"라고 내가 말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처가댁이 어디신데요?"라고 되묻는다. 그럼 나는 "일본이야!"라고 대답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눈을 번쩍 뜬다. 제법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처가댁이 일본에 있다고요. 정말로요?", "혹시 아내분이 재일교포세요?", 그리고 내가 "아니, 일본인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안 것에 대한 희열을 느끼는지 무한 질문의 포문을 연다. 


"와~, 신기하다. 아내분이 정말 일본인이세요?", "아내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아내분과는 얼마나 사귀고 결혼하셨어요?", "일본인 아내분과의 결혼생활은 재미있으세요?" …, 나는 단지 일본인인 아내와 결혼했을 뿐인데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들의 주목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한일부부'라는 타이틀은 그들이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그리고는 "앞으로 일본 여행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선배님께 여쭈어봐도 괜찮죠?"라고 물으며, 폭풍과도 같았던 질문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사실 나의 일본에 대한 지식은 이제 걸음마를 떼었을 뿐이지만 졸지에 나는 일본에 대한 수준 높은 전문가로 그들에게 인식된다. 아울러 '한일부부'가 아니었다면 아내의 고향도, 우리 부부의 연애사도 그리고 우리의 결혼생활도 그들이 궁금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일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나의 개인적 특색을 알게 된 것을 가지고도 아주 특별한 사람을 알게 된 것처럼 생각하고, 나의 개인사를 공유하려고 한다. 


그렇게 "한일부부"는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일본인인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던 그 선택, 그것으로 인해 나는 "한일부부"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나의 주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는 기준의 핵심에 "한일부부"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어떤 기준보다도 강력하게 나를 타인과 구별하는 그들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한일부부'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신혼 커플들의 삶과 다른 것은 아니다. 아내의 국적이 한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차이만 존재할 뿐, 사실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세를 살지, 전세를 살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현재의 직장생활이 내일의 비전을 담보해줄지에 대한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아울러 '한일부부'라고 해서 일본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한일부부'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접근성이 일반인들보다는 좋을 뿐이다.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통달한 전문가로 인식되기에는 나의 경험과 실력은 아직 많이 미약하다. 


"처가댁이 일본에 있습니다."라는 발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일부부'라는 타이틀을 가졌다는 것, 아내가 일본인인 경우가 흔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하나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개인사도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연예인처럼 또는 어떤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처럼 특별한 존재로 인식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한일부부'가 나의 정체성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일부부'인 우리 부부가 특별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한일부부'라는 독특한 겉옷을 입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한일부부'로서의 삶을 우리답게, 세상 유일하게, 누구보다도 잘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처가댁을 방문하면서 나는 "처가댁이 일본에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이 사실이 올해는 더 깊이 내 가슴에 와닿는다. "한일 부부"는 진정으로 나의 정체성이 되어 내 삶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내 삶의 색깔을 표현해주는 바탕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것, 그래서 특별해 보이는 이 사실의 의미가 올해는 보다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진정으로 특별한 존재로 살아보려고 한다. 겉으로만 특별해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진짜 특별한 존재로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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