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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살, 나의 삶을 바꾼 첫 비행기

[남편이 쓰는 신혼일기]


아내와 함께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던 화창한 봄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인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한국으로 유학을 온 일본인으로서 수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갔던 아내와는 다르게 34살의 새신랑은 긴장된 얼굴로 여객기의 한편에 앉아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작은 창밖으로 보이던 큼지막한 무언가들은 이내 새하얀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귀로 밀려드는 갑작스러운 찌릿함에 나는 옆에 앉아있던 아내의 손을 덥석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미리 준비했던 생수병을 나에게 내밀며, 조금씩 물을 마시라고 했다.


물을 마시며, 천천히 호흡을 하니 찌릿한 귓속 통증도, 막힌듯한 귀의 먹먹함도 사라졌다. 이륙 후 안정기에 들어선 여객기처럼 나의 두근거리던 가슴도 진정되었다. 그리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비행체의 흔들림이 무뎌질 즈음, 나의 생각도 깊어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34살의 나는 왜 흔하디 흔한 해외여행 한 번을 지금까지 하지 못했을까? 돈이 부족했던 대학시절에는 어려웠다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가까운 일본에라도 한 번쯤은 다녀올만했을 텐데 …,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언제나 성공에 대한 갈망과 함께 삶 전체가 구성되는 나의 의지 때문이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대학시절의 나에게 전공 공부 이외의 다른 생각은 들어올 틈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성공한 취업, 경제적 압박감에서 벗어나며 숨통은 트였지만 비정규직의 폐해를 몸소 경험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을 얻어야겠다는 꿈을 좇느라 하루하루가 바빴던 사회 초년생이었다.


2년이 조금 지나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당차게 시작한 사법시험 수험생활은 천재가 아닌 지극히 보통스러운 나 자신을 마주하는 벅찬 일상의 연속이었다. 세상을 향한 원대한 포부에만 의지하며, 5년이고 10년이고, 수험생활을 지속하기에 서른을 코앞에 둔 젊은이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후 수험생활을 접고, 재취업에 성공하여 공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충족되지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입사했어도 희망을 이루고, 희망을 전달하며, 희망을 심겠다는 나의 원대한 포부는 그 형태가 변화되어 내 마음과 몸이 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글로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으로 무장한 내 삶이 오롯이 펼쳐지고 있었다.  


위대함을 담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꿈을 쫓았던 삶은 아름다웠지만 재미는 부족한 삶이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이 자연스러워져서 다른 형태의 삶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를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나의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과 직장이라는 범위를 벗어나, 여행과 놀이라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눈을 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이 꿈을 향해 노력하는 인생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첫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작은 결혼식을 추구하던 개인적 신념과 함께 유학생이었던 아내의 국내 체류 문제가 겹쳐서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했다. 그로 인해 일본에 계신 아내의 부모님도 한국에서 처음 만나 뵙게 되었다. 결국 신혼집을 꾸리고 신혼생활에 적응할 즈음, 나는 일본에서 가족들과 결혼식의 형태를 담은 식사회를 치르고, 일본과 한국을 여행하는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생의 첫 비행기에 올랐다.


34살, 결혼과 함께 나는 여권을 만들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언제 경험하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경험이었다. 뜻은 있었지만 건조하고 단조로웠던 삶, 나는 그 삶을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바꿔버렸다. 여전히 목적 있는 삶을 살지만 세상이 선사하는 재미를 아내와 함께 누리며,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첫 비행기 탑승, 첫 해외여행, 첫 일본 …, 처음이기 때문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경험이지만 나에게는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간사이 공항에 곧 도착함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는 순간, 내 눈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경험해본 적 없는 일본이라는 해외라서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의 가치를 삶에 담으며, 정신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달라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꿈을 추구하면서도 보다 다양한 삶의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나 자신이 이제는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변화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수십 년이 흘러도 기억할 처음 비행기를 타던 그 순간에, 부부가 각자의 고향을 탐방하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타국이 아닌 한국과 일본을 여행하던 그때에, 엄청나게 변화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되었다. 계획적이고, 의지적인 삶으로 조각되는 목적 있는 삶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한 길을 걸으며 만들어가는 지극한 인생 여정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의 강렬한 설렘과 긴장이 내 안의 DNA를 완전히 다른 사람의 그것으로 바꿔버린 듯 …, 나는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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