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임신하고 8개월쯤, 학동사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7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에서 환승하다가 진이 빠진 이후로 대중교통을 타지 않았다.
친구들은 다 아가씨였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그녀들을 만나려면 저녁 시간밖에 기회가 없었는데, 퇴근 시간 무렵 초만원의 지하철에 부른 배를 안고 타는 건 생각보다 더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9호선 타고 출퇴근하며 콩나물시루처럼 끼어서 다니는 게 이미 익숙했지만 몸이 만삭이 되니 쉽지가 않았다. 스치는 인파가 너무 많았고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때로 배를 흡 하고 당겨서 피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게 전혀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의 없이 불쑥 배를 만져보는 할머니들의 출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후로 아기를 낳고 조리를 마친 뒤 나는 운전을 시작했다. 오랜 장롱면허의 부활이었다.
도로주행 경력이 없었기에 모든 외출은 그야말로 죽기 살기 드라이빙이었다. 사고가 나면 아기가 다칠 수 있고 그러면 남편이 다시는 기회를 안 줄 것 같았다.
그 후로는 시골 또 시골로 다니며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대중교통이 필요가 없는 아이엄마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간혹 친정에 갈 일이 생기면 비행기나 KTX 등을 이용할 때도 있었지만, 늘 동행이 있었다.
나는 오늘
혼자서 버스를 탔다.
사실 어제도 탔다.
어제는 서점을 갔고 오늘은 수영장을 간다.
같은 노선버스가 마주치면 기사님들끼리 손인사를 하시는 정겨운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옛날엔 기사아저씨가 다 엄청 나이 많아 보이셨는데 요즘 기사님들은 심지어 나보다 젊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환승을 하는 건 굉장한 기다림이 드는구나.
버스가 언제 오려나 계속 살피면서 피부로는 불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가을이 오고 있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셨던 계절.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마을버스라더니 정말로 작고 아담한, 카운티가 정류장으로 오고 있다.
감상에 젖을 새 없이 나는 또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