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고속터미널은 발 댈 틈 없이 혼잡하다. 잠깐 주차를 하기 위해 공영주차장에 자리 나기를 맴맴 기다리기 복잡해서, 신세계 강남점에 주차를 하고 주변 상가 베이커리에서 케익을 샀다. 출차를 하려고 보니, 주차비가 너무 비싼 거다. 얼추 헤아려보니 그 잠깐 새에 주차비가 벌써 5천 원이 넘어가고 있었다. 주차비는 이대로 버려지는 건데 아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백화점 구매 영수증이 있으면 주차는 무료라는 문구가 눈에 확 띄었다. “한 시간도 안 됐는데 5천 원을 내야 되다니 너무 아깝다. 근데 물건 사면 공짜래! 우리 들어가서 한번 둘러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사자.” 백화점 두어 층을 둘러보다 예쁜 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기억에 그때당시 샌들의 가격은 9만 원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니 남편은 그 샌들을 사줬고, 주차비 무료로 백화점을 빠져나오면서 남편은 약간 이 상황을 웃겨하는 듯했지만 나는 ‘알뜰하게’ 득템 했다고 생각했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런 소비습관은 단순히 한 번의 해프닝이 아니라,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그보다 더 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전도여행을 갔는데, 그때 내가 가져간 선글라스를 보며 팀원들이 오오 선글라스 예쁘네, 한번 써보자 했었다. 응, 예쁘지? 엄마가 골라준 거야. 진짜 가볍고 편해.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게 쏟아지는 관심은 그저 내가 팀의 막내이기 때문에 그런 걸로 생각했다. 선교지에 갔더니 스타일리시한 여자 선교사님이 계셨다. 그분께서 내 선글라스를 보시더니, “다비자매 그거 나 주고 가”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이 농담 같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 선글라스가 페라가모 거라는 걸. 당시 내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오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그날 5천 원을 아낀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예정에 없었던 10만 원을 쓴 것이다. 여름 신발은 물에도 젖고 땀도 많이 나는데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곧 아기 가질 예정인데 그렇게 높은 샌들힐을 사다니. 신발은 한동안 못 신으면 삭아서 낡아지고 말아 그때의 그 신발은 생애 주기에도 맞지 않고, 주차비 아끼려고 대신 소비를 한 거라기엔 그 값이 우리 재정 형편에도 과분했다. 선글라스도 마찬가지다. 갓 스무 살 되는 아이에게 명품 선글라스는 분수에 맞지 않고 전도여행을 가는 상황에도 맞지 않다. 형편에 맞지 않는 소비 생활. 그것이 문제였다.
엄마는 머리 하러 한 번 가면 20만 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썼는데 짧은 머리 스타일이라 미용실을 진짜 자주 갔다. 옷도 고급으로만 샀다. 자주 사진 않았지만 한번 살 때 항상 고급스러운 것으로여러 개 샀다. 살림도 마찬가지였다. 앞접시 하나도 브랜드 있는 것만 썼다. 엄마는 널따란 앞베란다 가득 다육이를 키웠는데, 분값을 알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냥 길 지나가다가도 분집에 들어가서 차 트렁크 가득 화분그릇들을 사 오는 엄마를 많이 봤다.
나도 그게 자연스러워서, 머리는 그 정도 가격에 해야 제대로 하는 머리집이라고 생각했다.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도 충분히 예쁜 머리를 할 수 있는 미용실이 얼마든지 많다는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나도 유부녀인데 겨울 부츠는 제대로 된 걸 사야지 하며 백화점에서 맞춤으로 제작해서 신었었다. 근데 천연가죽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져 그 신발은 얼마 신지 못했다. 그 부츠를 몇 번이나 신었을까? 나는 그냥 합성피혁으로 된 신발들이 훨씬 가볍고 따스하고, 눈을 밟아도 마음이 편해서 좋다. 엄마 말마따나 우리 딸은 귀티가 나서 아무거나 입혀도 예쁜 것일 테다. 또 엄마 말마따나, 어쩌면 나는 태생부터가 천한 지 씨여서 본투비 싸구려라 그런지도 모른다. 엄마 말이 둘 다 맞을 것이다.
이런 식의 소비 문제가 아마 기억하지 못할 뿐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씀씀이 자체가 정말로 컸고, 점차 남편에게 물들어 가성비 좋은 소비로 바뀌어 갔지만, 철없이 써대는 건 여전히 변치 않았다. 지금은 애들이 커져서 1인 1 치킨씩 많이 먹으니까 자꾸 마이너스지만 결혼 초엔 교체할 살림세간이 있길 하냐 그땐 둘 다 일 다니느라 바쁘고 식료품도 거의 안 샀는데 왜 매달 펑크가 났겠나.
이런 깨달음을 남편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동안 나 데리고 사느라고 정말, 정말로 고생 많았다고. 그래도 당신은 항상 허허 웃고 넘어가줬던 것을 기억하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고. 남편은 내게 대답했다.
가성비 왕의 아내답게 싼 거 자주 사는 당신이 승리자.
울다 웃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별꼴 다 보이며 살았는데, 이제 울다 웃기까지 했으니, 엉덩이에 털까지 나게 생겼다. 아핫_
외벌이로 살면서 때로 지치고 막막한 날도 많았을 텐데,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생활비를 대체 얼마를 쓰는 거냐, 한도에 맞춰서 계획해서 써야지 잔소리를 할 법도 한데_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앞으로 더 잘해야지, 이 아저씨가 할아버지 되어도 잘 모시고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인생에는 부부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 중 한 사람이 너무 어른스러우면, 그 반대급부로 배우자가 철이 안 든다고 한다. 철없는 배우자를 보며 정신 차린 쪽이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어 힘든 수레가 날로 더 팍팍하게 무거워지기만 하는 거라고 하는데, 우리 집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반성하고 회개한 뒤로, 우리 남편이 뭘 그렇게 사대는 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택배상자가 자주 집 앞에 도착해 있다. 그동안 남편이 아낀 만큼 내가 펑펑 써, 우리 집 통장은 텅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덜 쓴 만큼 남편이 소비를 시작했다. 정말로 균형이 기가 막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