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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Dec 05. 2024

장례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정신과에 진료예약을 했다

혼란스러웠다. 어지러웠다.

시시각각 조문객들은 빈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엄마의 영정 사진과 향년을 보며 모두 같은 말을 했다.

1 이렇게 가기엔 너무 젊다

2 저 사진은 언제 준비한 거냐? 예쁘다. 다비 너랑 너무 닮았다

3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가버렸냐, 뭐가 그리 급해서

4 애들 몇학년이니? 많이 컸구나

모두 다른 분들인데 하나같이 짠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쉴새없이 조문객을 받으며, 머릿속으로 박살난 퍼즐들의 조각을 맞췄다. 엄마가 하는 말들만 듣고 살았을 땐 풀리지 않았던 의문의 조각들이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맞춰진다는게, 정말 이상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세상을 알고 살아온거야?


나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날에만 엄마에게 독화살을 겨눴고, 나라는 딸은 언제나 엄마의 강력한 지원군이었다. 엄마가 슬퍼하면 함께 울었고 엄마가 기뻐하면 박수쳤으며 엄마가 화가 나면 나도 함께 분개했다. 엄마가 하는 말들이 때로 모두 이해되지 않고 공감되지 않아도, 나는 그저 엄마의 삶 전체를 끌어안았고, 그럴 수 있지 이해하려 애를 썼다. 엄마가 이제 더 이상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얼토당토않게 미국에 간다고 할 때에도, 사람들은 다 딸인 내가 엄마를 잘 설득해서 병원에 모셔가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만약 암에 걸린다면 항암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먼저 했다. 엄마에게 굳이 쓴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더 좋은 답을 찾아내실 분이라고 여겼기에 ‘필요한 말’보다는 공감을 주려했고,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 따뜻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였다. 이야기의 끝엔 엄마 인생의 슬픔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서로를 부둥켜안았던 수많은 밤들이 있었다.


그런데 작은엄마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형님하고 아주버님을 보면 정말 아주버님은 어떻게 사셨나 싶은 때가 많았어. 우리가 다 듣고 있는데도 너무 대놓고 아주버님을 무시하시더라고. 듣는 내가 다 민망해서 혼났어.”

“다비 네가 결혼하고는 시골에 오질 않으니까, 우린 다들 네 소식이 궁금했는데 엄마는 다비는 안 올거라며 얘길했어. 그리고 엄마가 지금 이렇게 아픈 것도 넌 전혀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가 병원에 안 간다고 아주 생지랄을 떤다고 하셨어. 그랬는데, 네가 그때 수술하고 와서 엄마랑 있는 걸 보니까 내가 많은 생각이 들었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언제 엄마한테 병원 안 간다고 지랄을 했던가? 나는 모두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좀 설득시켜라는 민원을 처리하느라 힘들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해야되지 않냐 저렇게 해야되지 않냐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나도 또 항암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질 않는데 어떻게 엄마 일이라고 그렇게 가라고 하겠냐고 엄마 편을 들었던 나다.


엄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도, 그리고 손주들이 보는 앞에서도, 심지어 사돈이 있는 데서도, 아빠를 무시하고 깔아뭉개는게 일상이었다.

명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휴게소에서 엄마 아빠 나 셋이 있는 단톡방에 톡을 보낸다. “우리 이제 OO휴게소 지나가요~”

“많이 갔구나. 길이 막히지는 않니?” 혹은, “이서방이 운전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이정도 톤으로 답이 왔으면 참 좋았겠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실제 엄마의 답장은

“빨리 갔네. 이서방은 운전을 잘하네. 느이 아빠는 사람 머리 아프게 이리저리 차선만 디지게 바꾸고 도착은 느려.”

대체 마지막 문장을 붙인 의도는 무엇일까? 심지어 이 방엔 아빠가 있는데! 엄마네서 명절을 보냈던 재작년의 어느날, 나는 이같은 엄마의 표현방식에 넌더리가 나 한마디를 덧붙이고 말았다.

“엄마,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내가 볼 때 불필요한 문장 같아. 아무튼 우리 잘 내려가고 있어요~”


그 말이 엄마한테 아니꼬왔을까? 나는 친척 식구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지 세뇌되어 결혼 후 거리를 둔 건데, 엄마는 그 틈을 이용하여 가족들에게 나를 배은망덕하고 못된 아이로 만들어 놓았다.


엄마는 진짜 사랑한 사람이 있기는 했을까?




엄마를 잃어서 너무나 슬프면서도

엄마가 죽어서 왠지모를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40년간 지속되던 트루먼쇼가 끝난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잖아? 나는 이제 좋아질 일만 남은거야! 왠지 모를 희망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흔들리는 패들보드 위에 올라선 듯이 위태로운 기분이 들었다.

정신의학과에 모바일 진료예약을 했다. 며칠이 지나 예약날 아침, 남편에게 톡이 왔다.

‘당신 병원 예약했니? 상담 받아보게? 잘했어.’

남편 몰래 나갔다 오려던 나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장례준비를 대행했던 남편이, 여러 가지 카페 등 엄마 투병 정보도 검색해볼겸 해서 사무실 컴퓨터에 내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둬서 그리로 오늘 아침 예약확정 알람이 간 것 같았다.

이렇게 허술하니까 그런 트루먼쇼의 노예로 평생을 살았던 건가 싶었다.


나는 옛날부터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심리학과에 가서 마음 공부를 하고 싶었고, 광고학과에서 가서 사람 마음을 사는 기똥찬 카피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내가 지독하게 아프다는 걸 몰랐지만, 나의 어딘가에서는 살고 싶다고 간절히 외쳤던 것 같다. 리 집 서고에는 마음 관련한 책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김지윤 작가님의 책은 내게 큰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왜 엄마가 벅차고 힘이 들까? 모녀 사이는 행복하고 좋은 건데. 나는 왜 이토록 가시덤불을 끌어안은 기분이 들지? 해결할 수 없었던 내 안의 깊은 아이러니를 설명해준 책이었다.


엄마, 그래도 난 엄마의 생 전체를 이해해.

엄마는 너무 힘들었잖아. 아팠잖아.

나는 지금도 엄마를 사랑해.

그런데 나는 엄마를 이렇게 사랑하면서도, 엄마 때문에 지독하게 아프기도 해. 엄마_

이제 나한테서 떠나줘서 고마워...

아픔 없는 곳에서 엄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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