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지르고 나면 가슴이 텅 비어버린다. 나는 왜 매번 이렇게 아이들의 사소한 투닥거림조차 용납이 안될까?
엄마가 싸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싸우지 좀 마! 진짜 끝장을 보든가!
언제나 급발진 버튼이다. 결국 내 화는 폭발하고 만다. 화를 더 큰 분노로 잠재우는 꼴이다. 쉽게 진압되지 않으면 폭력까지도 불사한다. 그리고는 또 후회와 좌절로 범벅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육아현장에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였다. 신앙의 힘으로도, 인격수양으로도도무지 해결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막내 작은엄마가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형님은 별일도 아닌 걸로 다 큰 애를 싸대기를 때리셨어. 나는 너무 무서웠어. 내가 보고 있는데도 그렇게 때리면 안 보는 데서는 어떻게 때린다는 거야? 근데 더 놀라웠던 건, 엄청난 짝 소리가 나면서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맞았는데 다비 네가 울지 않았다는 거야. 나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엄마는 너를 인격체로 존중하기 때문에 너를 때린 적이 없어.” 엄마의 이 말을 나는 굳게 믿었다. 그런데 작은엄마의 이야기를 의심할 수 없었다. 우리 막내 작은엄마는 그냥 사실 그대로, 가감 없이 말하는 분이시니까.
나는 뭐든지 좀 생생하게 기억하는 편이고, 오랫동안 기억의 서랍에 저장했다가 이렇게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현장감 있게 글로 실감 나게 풀어내는 재능(?)이 있다. 암기에는 자신이 없어도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는데_ 그런 내가 이토록 까맣게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었다니_?
그런데, 30년 전에 내가 맞았다는 사실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작은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말속에서 현재 2024년에 아이들을 때리는 지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서다.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는 내 모습, 아이에게 손을 대는 내 모습에 누군가 갑자기 강렬한 써치라이트를 비추는 듯했다. 작은엄마의 말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현재의 나를 폭로하는 빛이었다.
나는 애들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어.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하면 되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매사 싸움을 만드는 저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내가 부탁도 했는데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이제야 알았어. 나는 그 옛날에 엄마아빠한테 제발 나를 두고 그렇게 싸우지 좀 말라고 외치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내가 당한 대로, 아이들에게 행하고 있었어...
피해자가 시간이 흐르며 자신도 모르는 새 가해자가 된 상황. 가슴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이건 엄마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내 아이들에게도 어둠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폭력의 대물림은 내가 끝낼 수 있다.
온몸이 충격으로 덜덜 떨리고 있지만, 나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나는 오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다짐한다. 화가 아닌 대화로,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