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내 삶에는 해결되지 않는 퍼즐들이 너무 많았다.
얼마 전 연재를 시작했지만 중간에 발행을 멈추고 있는 [되바라진 소띠 며느리]도 그 퍼즐 중 하나이다. 7월 11일 발행했던 3화에 신혼집 구하는 전세금 이야기를 그렸는데, 그 글을 발행하고 나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숙모가 우리 어머님이 보여준 집의 전세금을 어떻게 알아?’
나는 내가 보고 다니는 신혼집의 가격이 얼마인지 숙모님께 말씀을 드린 적이 없다. 그런데 숙모는 대체 어디서 그런 내용들을 속속들이 알고 계셨을까? 그리고 얼마나 속이 터져서 나한테 전화까지 하시게 되었던가?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혼란스러웠다. 내막을 아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아니고 우리 신랑이 아니면 시어머니 그리고 우리 엄마뿐이기 때문이다. 숙모에게 그 이야기를 할 사람은 오직 우리 엄마뿐이었다. 숙모가 내게 격분하여 말씀하셨던 내용을 떠올려보면 더욱더 혼란은 가중된다. 숙모가 내게 주장하셨던 내용은, 엄마의 입장을 지원하는 내용이 아니고 정 반대로 대치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네 마음 편한 게 우선이다, 아무리 아직 아이가 없어도 남편한테 서재방 하나 줘야 되고 그렇게 살기엔 넓은 집이 좋지, 작전동 집으로 해라 추천을 하셨다.
유명한 모 여자 연예인이 경제형편이 기우는 연애를 하자 결국 그 모친이 딸의 남자친구가 못마땅하여 둘을 찢어놓았다는 가십을 전하며 엄마는 딸 가진 엄마가 그렇게 속물처럼 밝히면 못쓴다, 자기 딸을 윈도우녀 취급하는 거나 다름없다 등의 신랄한 평가를 했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런 고상한 태도를 고수하시고 사실 속마음은 친구 같은 숙모에게 털어놓으셨던 걸까?
또 한 가지 대표적인 의문 퍼즐은, 엄만 아빠 회사에서 상여금이 안 나왔네 월급이 밀렸네 하는 이야길 자주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규모 개인 사업장도 아닌 무려 주식회사가, 1950년대에 설립되어 이제까지 교육 출판사 계열에서 입지가 굵은 출판사들 중 하나였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 상습적 임금체불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나는 자라면서 항상 아빠 월급이 적다고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살아서, 아빠 월급이 정말로 쥐꼬리인 줄만 알았다. 그러다 언젠가 아빠 봉급 액수를 듣고 ‘오?!’하고 놀랐던 기억의 조각이 있다. 그러니 더 의문이 깊어진다. 현재 우리 가정은 짜장면 한 그릇에 만원 가까이 육박하는 물가 속 2024년 4인 가족인데 300만 원 남짓 소득으로 그럭저럭 산다.
엄마 유품을 정리하면서 의문이 조금씩 벗겨졌다. 이제 보니 엄마는 샴푸 하나를 써도 아무거나 쓰지 않았다. 엄마가 쓰는 용 샴푸는 따로 있었다. 스킨로션도 작은 병에 십몇만 원씩 하는 거, 그러니 스킨로션 한번 사면 이삼십 깨지고, 크림까지 사면 사오십 들어가는 건 예사다. 그런데 엄마는 색조화장을 하지 않으니 겉으로 볼 땐 항상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얼굴로 다니는 사람 같아 보이는 것이다. 속옷도 와코루 이상은 입었고, 그것 역시 밖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번은 엄마에게 괄사를 사드린 적이 있다. 코팡에서 만 원짜리 괄사를 샀는데, 팔과 목에 해보니 꽤 시원해서 손을 많이 쓰는 엄마 생각이 나서 하나 선물했었다. 엄마도 손등이 참 시원하고 좋다며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아빠가 엄마 화장품 중 가져가서 쓸만한 것이 있으면 화장품 변하기 전에 가져가서 쓰라고 하셔서 화장대를 둘러봤다. 고급 브러쉬와 겔랑 블러셔가 있었다. 구슬 아이스크림 같이 생겼기 때문에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이영애 괄사가 있었다. ‘이거 티브이에서 광고하던 건데?!’ 싶어 가격을 검색해 보니 내가 사 드린 괄사의 스무 배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엄마는 괄사에 만족하셔서 제대로 된 걸로 새로 장만하셨던 듯하다.
엄마는 아빠가 하도 깐깐하게 굴어서 접시 하나도 아빠 허락 없이는 못 사고, 항상 숨도 못 쉬고 산다고 나한테 하소연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엄마가 카드로 뭔가를 결제할 때 아빠에게 사도 되는지 허락 맡고 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결혼하고 생활비라는 공동의 시스템 안에 생활을 해보니, 뭔가 큰 카드대금이 찍혀 나오면 이건 뭐야? 하고 물어보게 될 수밖에 없고 그게 부부의 대화인 법이더라. 엄마는 아마도 아빠가 카드명세서에 이건 뭘 산거냐고 물어본 것을 남편이 자기를 사찰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늘 이중적이었다. 기도만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엄마는 고통이 한계에 다다를 때는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에 갔다. 새벽이고 언제고 전화를 했다. 400킬로미터 떨어진 나한테 전화를 할 게 아니고 병원을 가거나 차라리 기도를 했어야 했다. 의사가 자길 죽일 거라고 했지만 정작 그 의사 선생님이 내린 처방 덕분에 매번 고비를 넘겼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다 보시고 아시는 중에 일어나는 거라고 하면서, 의학의 발달을 허락하시고 과학을 발견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인정하지 않았다. 유전자 변형된 것들은 못쓴다고, 예전 것들이 좋다고 했지만 사실 지금 우리 밥상에 올라온 그 어느 채소도 오리지널 품종은 없음을. 품종 개량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달고 실한 과일과 채소를 식탁에서 만날 수 있었음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문제는 항상 “주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로 말의 시작을 연다는 점이다. 그 말은 주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말에 반박 시 너는 주님 뜻을 모르는 놈,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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