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Dec 07. 2024

값비싼 월드콘 먹는다고 구박받는 남자

나는 2학년 때까지, 세상에 라면은 신라면밖에 없는 줄 알았다. 우리 집엔 언제나 신라면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도 라면을 참 좋아하는데, 매운 음식은 잘 못 먹는다. 어릴 적 라면의 추억은 항상 물대접을 옆에 두고, 면을 씻어서 먹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한 올 한 올 씻어서 먹어도, 너무 매워서 눈물 콧물 범벅을 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세상에는 별별 맛의 라면이 다 있다는 걸 알고서, 우리 집도 스낵면도 사고 우동도 사고 진라면도 사자고 했지만 언제나 엄마의 선택을 받는 것은 오직 신라면뿐이었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라면이야. 그게 이유였다. 우리집에서 라면 결정권은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른 라면을 사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용돈으로 밖에서 내가 먹고 싶은 라면을 혼자 사 먹었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묻혔던 일이,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나는 값에 상관없이 사준다. 계란이 한 판에 얼마면 어쩔 거야, 그래서 애들 우유랑 계란 안 먹일 거야? 이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몇 년 차 주부임에도, 아직도 식료품의 가격은 그저 어렴풋하기만 하다. 대신 치약, 휴지, 샴푸, 세탁세제 등 생필품의 가격은 ml당 가격을 꿰고 있는데, 이게 진짜 핫딜인지 아닌지 알아야 쌀 때 왕창 사기 때문이다.


아빠가 즐겨 드셨던 간식들을 떠올려본다.

건빵, 롯데샌드, 초코파이, 빠다코코낫, 그리고 월드콘. 아빠는 월드콘을 좋아했다.

저 인간은 고급도 아니면서 꼭 저렇게 ‘비싼’ 월드콘만 먹는다고,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드실 때마다’ 엄마가 구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 월드콘이 얼마였을까? 너무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 보니 1992년에는 500원, 2000년에는 700원이었다. 그렇다면 엄마가 드셨던 죠스바의 가격은 또 얼마였을까? 1992년에는 250원, 2000년에는 400원이었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 같음 매번 저렇게 한소리 듣느니 그냥 비비빅 먹겠다, 속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월드콘을 드시는 것은 어쩌면 아빠의 작은 사치였을지 모르겠다. 아빠가 1년에 월드콘을 몇 개나 드셨을까? 그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천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그때 한 번이라도 편을 들어 드릴 걸.

구박받을 줄 알면서도 월드콘을 고른 아빠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나도 내 삶에서 그런 월드콘 하나쯤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에게 월드콘은 그냥 아이스크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그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보상이고, 자그마한 자유의 선언이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담긴 아버지의 고단함과 작은 기쁨을, 그땐 미처 몰랐다.


엄마의 영정사진을 본 수많은 분들이 내 사진인 줄 알았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하셨다. 그래, 자라면서 나는 늘 엄마를 닮고 싶었다. 까무잡잡한 아빠보다 엄마가 더 예뻐 보였고, 엄마의 유창한 말솜씨를 닮고 싶었다. 손에 장애가 있음에도 손을 사용해 저렇게 일을 척척 잘 해내시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별로 닮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는 늘 내게서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내게 이미 흐르고 있는 ‘지 씨의 더러움과 천함’을 발현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렇게 엄마를 본받고 닮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비는 정말 엄마를 똑 닮았구나’ 인정을 받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성형을 하고 싶어졌다. 내 얼굴에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토록 엄마를 닮았는지, 찾아내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바꿔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내 삶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엄마처럼 강하고 똑똑해지고 싶었지만, 엄마의 날카로운 말과 기준은 늘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와는 다르게 살 거라고.



난 엄마 닮기 싫어.

나는, 저렴한 샴푸 쓰고 애한테 진라면 순한 맛 사줄 거야. 남편이 좋아하는 건 무엇이든 존중할 거야. 신라면뿐 아니라 월드콘도 얼마든지 사주고 싶어.


생각보다 인생은 짧아. 100세를 사신 할머니들도, 항상 인생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하셔. 인생 정말 길었다 아휴 지겹다고 하시는 분 단 한분도 난 못 봤어. 엄마는 왜 그렇게 짧고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날이 선채로, 치열하게만 살았을까? 나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남기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면서 말이다.

모자라도 괜찮아, 힘 빼도 괜찮아. 남편이 결혼생활에서 내게 숱하게 해 줬던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은 내가 알을 깨고 나오길 간절하게 응원해 왔던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알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엄마를 거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을 나답게 꾸려가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내 아이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랑 너무나 닮았지만,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은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엄마처럼 강해지면서도, 엄마와는 다르게 사랑을 더 많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를 위한 월드콘 하나쯤은 언제든 손에 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보여줄 진짜 강함이고, 내 삶을 나답게 꾸리는 방법이다.


성형외과는 가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