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에, 갈색과 연베이지로 이루어진 셔츠와 모자, 스커트와 타이가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저기에 꼭 들어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조르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그런 식으로는 통한 적이 없었다.
이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이점은 무엇인지, 비용대비 어떤 효과가 날 것인지에 관해, 기업 프레젠테이션 버금가는 설득력이 있어야 될까 말까였다. 그저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따위의 이유로는 비웃음만 사게 될 거라는 걸, 소녀는 이미 삶 속에서 체득했다. 어차피 안 될 텐데, ‘집구석 형편 뻔히 알면서 지밖에 모르는 소리 한다’는 핀잔이나 들을 것이다. 입단 신청서를 미싱 위에 넌지시 올려두었다. 이거, 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기를 기다렸지만 그런 질문은 끝내 받지 못했다.
주말마다 멋진 단복을 입고 학교 운동장에 모여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소녀는 정말 샘이 날 만큼 부러웠다. 우리 집보다 더 좁고 허름한 집에 사는 친구들도 저렇게 걸스카우트를 잘만 하는데. 소녀는 하굣길에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를 툭툭, 애꿎은 화풀이를 했다.
소녀의 집은 겉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속은 냉기가 돌았다. 부모님은 평소에도 자주 싸우셨지만 명절에는 그야말로 시베리아와 불바다를 오갔다. 소녀는 냉전이 나은지 격투기가 나은지 생각해 볼 새도 없었다.
“아 그럼 어쩌라고!” 아빠가 이 말을 하시면 그곳이 어디든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면 집중되는 시선이 창피했고, 나중에는 차가 생겨 시선집중 당할 일은 없었지만 아빠의 운전이 말할 수 없이 거칠어져, 그냥 몇 시간이 걸리든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소녀의 아빠는 화가 나면 어딘가에 차를 처박을 것 같이 운전을 했다. 차창을 열고 옆차선의 아저씨와 마구 싸웠다. 뒷자리, 소녀의 발치에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혼자서 얼마나 밟았던가.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상황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보면 ‘쟤는 지금 눈치 없이 왜 울어? 엄마한테 맞으면 어쩌려고’ 생각했던 소녀였다. 소녀가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녀는 혼자서 아이와 친정을 갔다. 남편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냉기를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차차 소녀는 친정을 멀리했다. 소녀가 낳은 아이들은 부부싸움이 뭔지, 그럴 때 어떻게 조용히 있어야 되는지 몰랐다. 그 옛날 눈치 없이 울음을 터뜨리던 티브이 속 아역들처럼, 소녀의 아이들은 자꾸 왜 이러냐며 질문을 했고 소녀는 그게 불편했다.
엄마가 자주 하시던 것 중에 ‘서비스’라는 게 있었다. 엄마는 은행 ATM기에 카드를 넣고 서비스를 받았다. 서비스를 받아서 할머니네 갈 때 장을 보고, 소녀의 옷도 사줬다. 영단어장에서 서비스를 찾아보니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듦’이라고 했다. 오호, 그런 거군. 시장에서도 과일가게 사장님이 이건 써비스! 하면서 귤을 더 넣어주시고 하는 걸 보니 서비스라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소녀는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심심풀이로 서비스를 한번 받아봤다. 그리고 다음 달에 날아온 청구서를 받은 뒤에야, 소녀는 서비스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은행이 이렇게 사채업을 해도 되나. 이자가 너무 심한데’ 성인이 된 소녀는 생각했다.
소녀는 피아노를 썩 잘 쳤다. 학원 선생님들마다 자기가 가르쳐보고 싶다고 욕심을 냈다. 조용하고 성실해 문제도 안 일으키고 무엇보다 습득력이 빨라 레슨 하는 재미가 있는 아이라고, 원비를 내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더 보내주시면 좋겠다고 했던 원장선생님도 있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그 흔한 콩쿨대회 한번 나가본 적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다 대회곡을 연습할 때, 소녀도 선생님이 골라준 곡을 열심히 연습했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으니 나도 이번에는 대회에 나가게 되겠지?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정신 차려보면 이미 지난 주말에 콩쿠르가 끝나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녀는 의욕이 없어졌다. 뭔가를 새롭게 해보고 싶었어도 하다 보면 중간에 하기 싫어질 수도 있는데, 소녀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최고가 되어 장학금을 받을 수준이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영역에도 도전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거는 기대의 무게가 소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실패하면 안 됐다.
하교 후 친구들을 구름처럼 이끌고 놀이터 그네판을 장악하던 소녀는 점점 뒤로 물러나 조용히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배우는 데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OO을 한다고 누구에게 소개했을 때 “오오” 감탄을 자아내 엄마의 어깨를 뿌듯하게 해 드릴 만한 영역이 무엇인가 분석했다. 애석하게도, 그런 영역은 없었다. 다 도전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이제 그 소녀는 마흔이 되어 생각한다. 우리 집 형편이 정말 그렇게 어려웠나? 정말 학원 피아노 레슨비가 없어 남들 다 다녀간 뒤 원장님 시간 한가할 때 가서 도둑레슨을 받아야만 했던가? 고작 4학년 짜리가, 걸스카웃 입단비를 그토록 고민하고 삶의 무게를 짊어졌어야 했는가? 명절에 김장김치통에 두세 통 가득 갈비를 재워가 시댁식구들의 환심을 살 돈으로 아이의 꿈을 지원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그게 어려운 일이었나? 죽은 소의 갈빗살에 갈색빛 양념을 입히기보다 살아있는 자식이 그토록 원했던 브라운빛 단복을 입혀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중년이 된 소녀는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소녀는 생각한다. 자신이 5년 전 그때 죽음의 고비에 다다랐던 날, 죽기 전에 캠핑이 가고 싶어 졌던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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