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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미식 Jun 29. 2021

#4 라면은 언제나 정직해

메뉴 테스트

공사는 더디게 진행이 됐다. 한 여름에 20년 만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목공 작업은 2주 이상 딜레이가 됐고 주문한 우드 슬랩은 습기를 잔뜩 먹어 가공을 할 수 없었다. 

더딘 공사 진행은 작업자들도 지치게 하지만 오픈을 기다리는 사장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진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감상에 젖을 법도 하지만 예정 오픈일에 비해 늦어질 것을 생각하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일이다. 공사와는 별개로 집에서 메뉴 테스트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오마카세처럼 여러 가지 안주를 준비했다. 수많은 바와 라운지들의 기본 안주들을 쭉 놓고 보자니 눈에 들어오는 조합이 있었다. 마르게리따 피자처럼 치즈, 토마토, 허브류를 조합한 크래커였다. 일식에서도 츠마미라고 해서 산미가 있는 식전 음식을 먹는다. 드라이 칩에 미니 모차렐라 치즈, 선드라이 토마토, 바질 페스토를 넣어 조합했다. 이것으로 하나의 웰컴 디쉬가 완성됐고, 이어서 아이스크림과 베이컨을 조합한 안주를 만들어야 했다.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을 샀다. 백 다방 아이스크림부터 클래식한 엑설런트, 하겐다즈, 나뚜루 시판되는 모든 브랜드를 맛보며 조합을 생각했다. 결국에는 극상의 단짠을 위해서는 베이컨의 역할이 중요했다. 미국스러운 맛의 근원은 간간 함이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캐내디언 베이컨을 사서 바짝 굽고 칩처럼 말렸다. 다소 밋밋해서 단독으로는 먹기 힘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베이컨을 꼽고 하나의 안주를 또 완성했다. 차가운 음식이 있으니 따뜻한 음식도 있어야 했다. 메뉴나 콘텐츠를 기획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구성인 '새로움'에 초점을 맞춰 모든 바에서 나오지 않을 법한 따뜻한 안주가 필요했다. 결국 일본의 바에서 더러 있는 드라이 카레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손이 가장 덜 가는 편이고(떠서 나가는 게 끝!) 하루 전에 끓이면 더욱 맛이 오르는 카레의 속성을 잘 이용하면 훌륭한 안주가 된다. 


마지막은 결국 라면으로 귀결이 됐다. 때마침 <기생충>의 여파로 한우 짜파구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일반 라면을 끓이면 향이 강렬해서 결국 위스키 향을 죽인다는 생각도 있었고 사실 짜장라면이 어쩐지 더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매번 시즈닝을 하기는 힘드니 팩에 든 채끝 스테이크를 샀다. 봉지에 적힌 레시피대로 만들기로 했다. 다만, 진정한 짜파게티 요리사는 물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물을 버리지 않고 자작하게 졸이고 소스와 올리브유를 첨가했다. 옆에서는 은은한 불에 스테이크를 굽고 레어로 익을 즈음 불을 키워 겉면을 지졌다. 모든 과정에 10분이 넘지 않았는데 맛은 그 어느 안주보다 강렬했다. 결국 라면은 배신을 하지 않았고 이 모든 안주의 결론이자 해장의 종착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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