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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Aug 26. 2021

 #21 그려왔던 모습

그저 평범한..

32피스 퍼즐은 보통의 7살 아이에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 콩이..

시지각이 좋지 않아 그림을 한 눈에 알아보기가 힘들어 한다.

조각조작 그림들이 모여있는 퍼즐은 더 어려운가 보다.

도통 그림을 보질 못한다.

퍼즐 조각은 모양만 맞다고 맞춰지는게 아니고 그림도 함께 봐야건만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오로지 모양만 열심히 맞춘다.

그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안 맞는 것 없이 모양으로는 다 끼워넣었는데

그림이 엉망이다.

콩순이 다리 자리에 송이 다리가 들어가 있고, 밤이 머리 자리에 콩콩이 리본이 달려있다.

녀석은 그걸 별로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을 무시하고 모양만 그렇게 딱 맞게 맞추는 것도 가만보면 신기하긴 하나...

역시 허탈하고 기운이 빠진다.




콩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7살 여자 아이 A.

까무잡잡한 피부에 긴 머리는 대충 묶여있거나 헝크러져 있다.

적극적이고 활발하여 선생님들도 좋아하고 다른 엄마 아빠들도 다들 좋아한다.

그 나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심을 가지고 있어

친구들을 챙기고, 어린 동생들을 챙기곤 한다.

물론 마냥 착하거나 온순하지만은 않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를 쓰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은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직장 동료의 9살 된 딸 B.

학교에 완벽히 적응을 마쳤다.

등교도 혼자하고, 돌봄교실도 좋아라하고, 하교도 혼자한다.

돌봄 이모님 오시면 문도 스스로 열어주는게 가능하다.

피아노나 바이올린도 적당히 배우고 있고,

한자나 영어공부도 남들 만큼 적당히 하고 있다.

적당하고 평범하게 자라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10살 여자 아이 C.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 밝게 인사를 한다.

항상 태권도 복을 입고 학원 가방을 메고 다닌다.

늘 밖에서 뛰어놀기 때문인지 얼굴색은 까무잡잡 건강해 보인다.

인사를 잘하고 착해 보이지만

눈매가 다부지고, 자기 할 말은 또박또박 잘한다.


지난 주 고등학생 토론대회 심사 중 봤던 여고생 D.

주제에 맞게 많은 자료를 준비하여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상대팀 논리의 허점을 잘 짚어내어 지적한다.

상대팀의 다소 거친 공격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반박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예상못한 질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자기 말의 논리적 모순에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는 상대방에 대한 덕담도 빼먹지 않는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여성 직원 E.

서울에 있는 중상위권의 4년제 대학을 다니며

아버지의 미국 파견근무에 동행하여 어학연수를 하며 삶의 여유를 가졌다.

대학 졸업 후에는 바로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였고,

두루두루 무난한 성격에 평판도 좋다.

이어서 멋진 남편을 만나 남들보다 이르게 결혼해 어느덧 두 딸의 엄마다.




우리 콩이가 이랬으면 하고 예전부터 그려보던 모습을 살고 있는 이들이다.

남들보다 특출나지 않고, 최고의 삶이라고 결코 할 수 없지만,

그냥 무난하고 적당하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삶.

콩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마음속에 그려왔던 모습을 누군가는 벌써 그렇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집 졸업하고, 초중고 졸업하여 무난한 대학을 가고 적당한 시기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하긴 어느덧 이러한 삶 자체가 평범함을 넘어서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그냥 그저 같은 또래들에 뒤섞여 울고 웃으며 재미나게 사는 평범함.


일단 인생 전반부를 자폐스펙트럼의 시련으로 시작한 콩이지만

아직 32피스 퍼즐도 낑낑대며 어려워하는 콩이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한 발 두 발 때로는 세 발 네 발 매일매일 발전하고 있으니

어느덧 지금과 다르게 아빠가 남들에게 별로 해 줄 얘기 없는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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