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우리는 느리게 갑니다
14화
실행
신고
라이킷
155
댓글
6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콩이 아빠
Aug 28. 2021
#22 나비공원에 가는 이유
차례차례 차근차근
집 근처 두레뜰공원 안의 '나비공원'.
나비의 일생을 모형으로 표현해 놓은 작은 공간으로 콩이가 그냥 그렇게 부르기에
우리에겐 자연스레 나비공원이 되었다.
어느때인가 부터 바깥놀이의 마지막에 우리가 거의 매일 가는 곳이다.
콩이는 놀이터를 다 순회한 후 마지막에 항상 이곳을 들르길 원한다.
6~7월 해가 긴 때에는
발달
센터에 다녀온 콩이가
퇴근한 아빠를 만나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이곳에 와도 제법 해가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같은 시간에 와도 어둠이 어느정도 내린 후 이다.
나비공원에는 꽃밭이 가꾸어져 있어 항상 여러 형색의 나비들이 모여들고,
그 옆에는 나무판을 기다랗게 나열하여 나비의 일생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초입에는 알-애벌레-번데기-나비 모형이 하나의 기둥에 순서대로 들어있는데
콩이는 이 기둥 앞 나무 그루터기에 올라 모형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좋아라한다.
각 칸의 모형들을 주의깊게 보고 질문을 쏟아낸다.
"아빠, 이 알은 무슨 나비 알이야?"
"아빠, 애벌레는 왜 맨날 나뭇잎만 먹고 있어?"
"아빠, 번데기는 맨날 웅크리고 잠만 자니까 심심하겠지?"
"아빠, 알은 다 이렇게 나비가 되는 거야?"
청소하는 이 없이 먼지에 거미줄에 한껏 더러워진 기둥을 바라보며 만져보며
매일 이곳을 찾아 나비의 일생을 감상한다.
두레뜰공원의 나비공원에 있는 나비 기둥
콩이는 원래 나비를 좋아했었다.
새 중에는 까치를 좋아하는데 전에 다른 글에 썼다시피
까치는 참새나 종달새 같은 다른 새 들과 달리 재빠르게 멀리 도망가지 않고
제 녀석을 살짝 피했다가 다시 근처에 내려 앉기 때문이다.
나비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잡으려고 하면 날랜 날개짓으로 그 손을 피할 뿐 애초 앉았던 꽃에서 아주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공원에는 금계국이든 개망초든 꽃들이 지천으로 있어 나비도 많고
콩이는 그 나비들을 쫓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러다가 나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듯 하다.
콩이가 즐겨보는 동화책에서
항상 우당탕탕 친구를 밀치며 서둘러 앞서가려는 아기돼지 퉁실이에게 나비가 충고하는 장면이 있다.
퉁실이가 나비의 아름다움에 반하자 나비가 하는 말이다.
"나도 처음부터 우아한 나비는 아니었어.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다시 번데기가 되고 그 다음에 비로소 지금 모습이 된거야."
"바로 나비가 되버리면 되지 왜 그렇게 기다렸어?"
"다 차례가 있는 거야. 애벌레가 되어야 번데기가 될 수 있는 거고, 번데기가 되어야 나비가 될 수 있는 거야. 너도 맨날 친구들 밀치고 다니지 말고 차근차근 차례를 지켜야 해."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알에서 시작해서 단계를 거쳐 나비로 자라나는 것과
어린이들이 차례차례 줄서서 질서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비슷한 맥락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교훈이 있는 얘기인지도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콩이는 저 동화책에서 나비가 하는 말이 뭔가 좀 좋았나보다.
차례차례 기다리는 거구나.
어린이집 ㅇㅇ이는 퉁실이처럼 맨날 먼저가려고 막 달려가. 차례를 지켜야 되는데..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계산할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 퉁실이처럼 밀면 안되지..
이런식이더니 그 후로 나비를 더 좋아하고, 나비공원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아빠, 나비가 알을 낳고, 애벌레가 되서 먹고 먹고 또 먹고,
그리고 번데기가 되서 매일 잠을 자고나면 예쁜 나비가 되는 거야. 나비는 훨훨 날아 다닐 수 있어."
나비공원의 모형을 보며 아빠에
게
강의를 한다.
"나 여기 나비 앞에서 사진 찍어 줘~"
매일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고,
또 아빠 핸드폰을 빼앗아 스스로 이마만 나오는
어설픈
셀카를 연신 찍어댄다.
사람은 모두 일생의 끝에서 나비가 된다고 해 보자.
여러단계를 거쳐 성장한다.
근데 나비와 같이 차례가 있는 건 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각 단계에 머무는 시간이 다른 것 같다.
누구는 애벌레, 번데기를 잠시 거쳐 쉽게 나비가 되고,
누군가는 애벌레로 한~참, 번데기로 한~참을 지내고 나비가 된다.
그래
서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리고, 또 누구는 아주 느리다.
근데..
말이지..
소망하건데
어차피 나중에는 다들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가 되겠지 뭐..
keyword
육아
장애
감성
Brunch Book
우리는 느리게 갑니다
12
#17 재택근무의 일상
13
#21 그려왔던 모습
14
#22 나비공원에 가는 이유
15
#24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대하는 수칙
16
#25 친구는 어려워
우리는 느리게 갑니다
콩이 아빠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1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