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와 함께 발달센터에 다니다 보니 콩이와 같은 진단을 받은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벌써 수년간 여러군데를 다녔으니 상당히 많은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만난 셈이다.
자폐스펙트럼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부분이 모든 아이들의 증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은 정말 가지각색이지만
언어 구사력, 상호작용 수준, 눈 움직임, 손을 사용하는 능력, 인지능력, 운동능력, 감각 예민성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부족한 부분이 엇비슷하다 할 만한 아이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콩이와 증상이 비슷하다고 할 만한 아이도 여지껏 본 적 없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활을 상당부분 희생한 채 발달센터에 다니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이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 안타깝고 안쓰러워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모습을 견디며 마음속에 화를 쌓아간다는 것이다.
고집부리고 떼 쓰고 말 못알아듣는 아이를 보며 그 화를 꾹꾹 눌러 참지만
결국은 한번씩 폭발하곤 한다.
평소 그토록 온화해 보이는 부모건만 아이의 행동이 수인한도를 넘어서면 결국은 참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아이를 혼내고야 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아이의 느린 성장과 그 치료를 함께 하면서 부모의 심리도 큰 타격을 받아 온 탓이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도 장애인 복지 정책에 포함되어 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를 마구 혼내고 훈육하는 것이 무제한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 자식이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죄책감과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무한정 견뎌낼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동의 증상이 중할 수록 부모의 심리치료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나는 콩이에게 버럭쟁이 아빠였고,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빠가 화를 내고 버럭버럭 한 이후에는...
콩이는 울고, 아빠는 반성한다.
부족한 우리 아이를 대하며, 몇가지 수칙을 따르려 한다.
# 지금 할 일을 내일로 미루라
보통의 경우라며 지금 할 일이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추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콩이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고 있고, 아빠는 그것이 답답한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양말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대충 신으려 하거나
신발이 놓여 있는 그대로 좌우를 바꿔신으려 하면서
고쳐줘도 되려 짜증을 부린다.
됐다.
꼭 오늘 똑바로 신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다.
그냥 내일로 미루자.
# 내 새끼가 아니다
무책임하거나 패륜적인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콩이가 제멋대로 하려하고 행동 수정을 이유없이 거부하면서 분노발작 할 때
이 녀석을 내 딸이고 내가 훈육시켜야 하는 대상이라고 전제하면
틀림없이 고성을 지르면서 녀석을 혼내곤 한다.
내 새끼가 아니다.
그럼 좀 진정이 된다.
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안쓰러운 아이가 하나 있구나. 저 녀석 부모는 참 힘드시겠다. 나라도 친절히 대해 주자.'
그냥 이러고 넘어가자.
# 니 자신을 알라
아이의 뒤처짐과 느림을 탓하지 전에 내 자신을 보자.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나는 뭐 특별히 남들보다 앞서갔나..
학습능력도 그저 그렇고,
운동능력도 그저 그렇고,
사회생활도 그저 그렇고,
돈 버는 것도 그저 그렇다.
나도 못하면서 뭘 아이한테 강요하고 가르치려 하는가.
그냥 나 자신부터 돌아보자.
# 딴 데서도 그럴 수 있냐
"분노조절 장애? 마동석한테 가봐. 그거 바로 치료된다"
어느 드라마에서 였나 이런 식의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나타나는 분노는 조절장애라 할 수 없다.
그냥 그 대상을 약하게 보고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한테 못하는 행동은 부하 직원한테도 하지 말라고 한다.
다른 사람한테 못하는 행동을 콩이에게 한다면 그건 콩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나부터 고치자.
사실 머리로 알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고치기 어렵다.
콩이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매일매일 고민하고 치열하게 고쳐나가야 한다.
멀리 길게 보고 가야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