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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Sep 06. 2021

#25 친구는 어려워

일요일 오후,

콩이 어린이집 친구 몇명이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는 연락이다.

콩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챙겨주려는 그 엄마의 전화가 고맙다.

친구를 멀리하고 피하는 콩이가 그 소식에 놀이터로 달려 나갈리 만무하다.

원래 그 놀이터를 지나야 하는 과수공원에 가려던 당초 생각마저 고쳐먹으려 한다.

그래도 일요일에 친구들과 잠시나마 한 공간에 있게 해 보려는 아빠 마음에

친구들과 놀지 않고 놀이터를 지나쳐 곧장 과수공원에 갈 것이라고 살짝 거짓말을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친구들 몫까지 아이스크림을 몇개 샀더니

"나 놀이터 절대 안가! 과수공원도 안가!"

친구들과 함께 놀기 싫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녀석이다.

아이스크림만 전해 주고 가자고 설득해서 겨우 놀이터에 닿았다.


어린이집 친구 3명과 엄마 아빠가 놀이터에 있었다.

아빠 뒤에 숨는다.

평소 무엇보다 좋아하던 아이스크림도 먹지 않으려 한다.

아빠가 다른 엄마 아빠들과 얘기를 하고 있으니

친구들을 피해 혼자서 항상 하던대로 통으로 된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간다.


콩이가 미끄럼틀 안에서 나올 기미가 없자, 친구 둘이 미끄럼틀 안으로 들어간다.

그 친구들과 미끄럼틀 안에서 노는가 보다 하는 기대도 잠시,

콩이가 미끄럼틀을 내려와 달려온다.

울상이다.

"아빠, 보미가 팔 꼬집었어! 아파!"

팔을 보니 뭔가에 긁힌 자국이 붉게 선명하다.

보미라는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안 내려오려는 콩이를 거칠게 잡아 끌다가 손톱으로 긁힌 자국을 낸 것 같다.

마침 그 아이가 콩이를 뒤 따라 오는 것을 보고 어찌된 건지 물었더니

"내가 안그랬는데!!"

얄밉게 강한 부정이다.

짜증났지만 애들끼리 그런걸 가지고 더 왈가왈부 할 수도 없다.


사실 일반적 친구 관계라면 그런 정도는 기억에 남지도 않을 별거 아닌 일일 게다.

집에서 연고나 좀 발라주면 며칠 가지 않을 상처이다.

원체 또래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콩이니까 문제다.

이런 상황에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한다.

오늘은 아빠가 있으니까 꼬집혔다고 표현이라도 한 것이다.

콩이라면 일과 중에 누가 괴롭히거나 귀찮게 해도 현장에서 대응하는 못하는 것은 물론 이고

그렇다고 그걸 기억하고 집에 와서 얘기할 리도 없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온 잠시 후 건우라는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콩이 입에 문지르려 쫓아다닌다.

콩이는 피하다가 얼른 아빠 뒤로 숨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불편해. 그만해"

어린이집이나 발달센터에서 이런 상황에서 대응하라고 배운 말이다.

그 말을 친구가 들리지도 않게 작게 겨우 말한다.

엄마 아빠한테는 큰 소리로 짜증도 잘내고 선생님들한테도 큰소리로 말만 잘하면서

또래간 대화에는 젬병이다.




걱정이다.

오늘 상황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 들이고, 제 녀석들 사이에서 놀면서 하는 행동들이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년에는 학교에 갈 것이고,

나쁜 친구들의 괴롭힘이라는 것을 맞딱뜨렸을 때

과연 콩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친구와 어울려봐야 이런저런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울면서라도 배울텐데

발달센터에서 선생님과 가상으로만 배우니 전혀 적용이 안된다.


어린이집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책만 보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과 상호작용이 없다.

녀석이 거부를 하니 선생님도 별수 없다.




그래도 최근에 약간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희범이라는 6살 아이가 어린이집에 새로 왔다.

어린이집 생활을 먼저 말하는 적이 별로 없는 콩이가 희범이 얘기를 한다.

"아빠, 희범이가 나한테 뽀뽀를 엄청 해 댔어 ㅎㅎ"

"아빠, 희범이가 내 양말을 가져가서 숨겼어 ㅎㅎ"

"아빠, 희범이가 내 안경을 가져갔어. 그래서 내가 야! 하지마 했어 ㅎㅎ"

"아빠, 내가 책 보는데 희범이가 가져가려 해서 내가 책 읽어 줬어 ㅎㅎ"

아빠가 듣기에 전혀 즐거운 내용이 아닌데 콩이는 신나 보인다.

콩이 한테 관심을 보이고 자꾸 옆에 오는 친구인 것 같다.

희범이 부모님한테 전달이 됐는지 희범이 아빠가 사과 전화를 하고, 만나러 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콩이는 희범이의 장난을 그리 싫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콩이가 피해도 계속 들러붙는 녀석이 하나 생긴 것 같다.

희범이 아빠 말을 들어보니 친구들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자기 하고 싶어하는 대로 하는 녀석이다.

그래..

차라리 잘 된거 같다.

시간 되는대로 양쪽 가족이 서로 왕래하기로 했다.

콩이에게 얘기해보니 다른 친구를 초대하자고 할 때보다 덜 꺼려한다.




학교가기 전까지 콩이가 싫어하건 말건 친구들을 더 자주 나게 해 줄 생각이다.

그동안 코로나 상황이기도 하고 친구 만나는 걸 콩이가 워낙 싫어해서 쉽사리 교류를 할 수 없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콩이는 분명 나중에 친구 관계로 힘들어 할 것이다.

운동능력 떨어지고, 여러 면에서 부족한 콩이다.

친구의 괴롭힘이 없을 리 없다.


친구 사이에 발생하는 이런저런 상황을 학교에 가기 전에 많이 겪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콩이에게 늘 해주던 "남들처럼 빨리 갈 필요 없어."라는 말이

아이의 하루하루 일상에서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겠다.

남들 보다 한참 느리게 가면 너무너무 불편한게 인생이다.

"남들처럼 빨리 갈 필요는 없어. 그런데 너무 느리게 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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