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이 아빠 Jul 30. 2021

#17 재택근무의 일상

아빠 옆 반경 0.5m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때면 재택근무가 권장된다.

요즘들어 그 빈도가 잦아졌다.

사무실에서 만큼 일하기가 힘들어 처음에는 참 효율성 없는 근무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몇번 하다보니 나름 적응이 된다.

집에서 근무하는 것을 고려하여 전날 사무실에서 미리 업무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일하는데 필요한 자료들도 꼼꼼히 챙겨놓으니 능률도 사무실 못지 않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절약되니 아침 저녁으로 여유시간도 생긴다.

답답한 마스크도 필요없다.


8시30분에 딸래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8시45분에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8시50분에 인트라넷에 접속하여 업무를 시작한다.

아침인데 여유있어 좋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제일 좋은 것이 점심시간이다.

일탈의 시간이다.

사무실에서 먹던 도시락에서 벗어나 평소라면 선택 못하는 메뉴를 고를 수 있다.

평소 점심으로 치킨을 생각할 수나 있겠는가.

오늘은 집 근처 '큰집 닭강정'에 후라이드 강정 大자를 전화로 주문하고 카톡으로 1만원을 이체한 다음

차를 타고 휭하니 가서 받아온다.

배달주문오토바이 소음을 싫어하는 내 취향이 아니다.

직접 받아오면 만족도가 올라간다.

한여름 점심이라도 따끈따끈한 닭강정은 언제나 진리다.

유튜브에서 500번도 더 봤을 마이클조던 하이라이트 영상을 켜고 치킨을 입안에 넣는다.

역시 맛있다.

다음 재택근무때는 지난주에 먹었던 비빔면에 참치 1캔을 비벼 큰 젓가락 질로 마구 먹어보려고 한다.

전자렌지에 돌린 커다란 고기만두 3개와 함께.




"아빠 오늘 재택근무 해?"

콩이도 재택근무라는 말을 안다.

아빠가 집에서 노트북 켜 놓고 누군가랑 간간이 통화하는 날이기도 하고,

아빠가 콩순이 만화를 보게 해주는 날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돌봄 이모님이랑 하원했을때 아빠가 집에 딱 있는 날이기도 하고,

어린이집에 안가는 날이면 아빠가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날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은 휴원인데 아빠는 재택근무하는 날을 콩이가 제일 좋아한다.

원하는 간식을 맘껏 먹을수 있고,

원하는 점심메뉴를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놀이감을 가지고 놀 수 있고,

그리고 원하는 콩순이 만화를 볼 수 있는 날.

물론 아빠의 여유로움은 없어지는 날이다.


우리 딸래미가 집에 있는 날은 재택근무 중 '근무' 부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제 녀석이 좋아라하는 퍼즐게임과 이야기 카드가 싫증이 나면 아빠를 찾는다.

보통 혼자 놀기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날 무렵이다.

"아빠 재택근무 하지마!! 나 심심해."

그때부터는 아빠 옆 0.5m 반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하면서 끊임없이 놀아줄 것을 요구한다.

노트북을 식탁으로 옮기고, 건너편에서 씨리얼에 우유를 부은 간식을 먹게 한다.

방금 가지고 논 이야기 카드 속 그림들에 대해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녀석이 간식을 먹고, 손을 씻고, 입을 닦고 오는 동안 후다닥 업무 하나를 해치운다.


그새 아빠 옆 0.5m 반경으로 다시 돌아온 녀석.

선긋기와 가위질을 같이 한다.

도형을 그리고 색칠을 하게 하고 다시 가위질을 하고.


콩이의 눈치를 보다가 아빠는 다시 노트북 앞으로 가고, 콩이는 혼자서 보드게임을 한다.

코잉스라는 ㄱ자 도형 맞추기 게임이다.

게임판에 그려진 모양대로 테트리스처럼 ㄱ자 도형을 끼워간다.

그렇게 어려워하더니 이제는 제법 잘한다.


혼자 노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반경 0.5m 안쪽이다.

"아빠 재택근무 하지마!! 나 또 심심해."

잠시 몸놀이를 같이 한다.

슈퍼맨 날아가기, 거꾸로 매달리기, 목마타기, 아빠 밟고 올라가기, 숯불구이 등등

녀석은 마냥 즐겁고 아빠는 즐겁고 힘들다.


어찌어찌 아침 일과가 지난다.

점심시간이다.

녀석이 있어 아빠의 점심메뉴 일탈은 물건너갔다.

치킨을 안좋아하고 비빔면도 먹지 않는 녀석이다.

떡국이 먹고 싶다한다.




오후에도 녀석이 이모를 따라 발달센터에 가는 4시20분 까지는 양상이 비슷하다.

"아빠 재택근무 하지마!! 나 또 심심해."

아빠 옆 반경 0.5m에서 활동하면 아빠의 일은 멈춘다.


아빠가 일을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은 콩순이 만화 영상이다.

우리 콩이가 유일하게 이해하면서 보는 영상이 대략 40~50분 정도 되는 콩순이 시즌1 에피소드다.

오프닝송과 동시에 소파에 앉아 있던 콩이가 자리를 박차고 댄스를 시작한다.


"안녕 나는 콩순이야 ♬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콩콩 ♬

여기저기 요리조리 우당탕탕 쿵짝쿵짝~~~♬

오늘도 사랑해♬

엉뚱발랄 콩순이~~♬"


여러가지 콩순이 노래 중에서도 이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 녀석이다.

저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노래인가 보다.


노래가 끝나면 "아빠 재택근무 하지마!! 아빠도 여기 앉아 이거 같이 봐."

아빠를 소파로 불러 제 녀석 옆자리에 앉히려 한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며 다른 업무를 마저 마무리 한다.

아이스크림 에피소드, 엄마생일 에피소드, 공주되기 에피소드..

많이 봐서 다 외울지경이고 애들 만화라 당연히 별 재미도 없지만,

콩이가 이해하고 보고 싶어하는 만화가 하나 생긴 것이 반갑다.

실제 사람도 아닌 콩순이에게 고맙다.


저녁 7시 쯤 발달센터를 마치고 오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아빠 재택근무 다 끝났어? 나랑 놀자."

이제부터는 잘 때까지 콩이 옆 반경 0.5m를 벗어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