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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l 05. 2021

#5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

어른이라고 더 성숙한 게 아니다.



녀석은 내가 싸워서 이기고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 아닐 터인데 언제나 이를 망각한다.

녀석이 뭔가 내가 싫은 행동을 할 때 버럭 소리를 지르면

녀석은 얼어붙고 내 눈치를 본다.

아빠의 버럭 소리에 한번 더 반항하기도 한다.

그러면 더 큰 소리로 버럭하고

녀석은 진짜 얼어붙어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이런 건 훈육이 아니다.

또래보다 인지가 떨어지고 자신의 행동이 뭐가 잘못됐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걸 강압적으로 저지하고 겁을 먹게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나약한 아이에 대한 학대일 뿐이다.


자폐스펙트럼 아이에 대해서는 훈육은 더더욱 제한적이어야 한다.

세상에 혼자 자립하는데 필요한 생활의 기술만 점진적으로 최소한으로 훈육해야 한다.

그 이상은 고문이다.

시지각이 안 좋아서, 소근육이 약해서, 협응이 약해서 애초에 잘할 수 없는 동작을

억지로 하게 시키면서 못한다고 꾸짖어대는 것은

사람이 사람한테 왜 날지 못하냐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과 다름 아니다.

너는 왜 그 시험 하나 합격하지 못하냐..

왜 남들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냐..

이러면서 폭언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녀석은 겉과 속이 뒤집어진 티셔츠 하나를 제대로 뒤집어 내지 못한다.

어쩌면 뒤집어져 있다는 걸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손가락 움직임도 굼떠서 깨작깨작 뒤집는 시늉한 하고 있는 녀석에게

"손을 넣어서 목 부터 뒤집어야지!"

"팔을 찾아 팔을! 눈으로 보고!!"

"팔이 두 개잖아! 하나 더 찾아야지!!!"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댄다.

정말이지 옷을 찢어버리고 싶다.


녀석은 겁먹은 채로

"목 뒤집고.."

"이제 팔을 찾자.."

어느새 울먹이며 스스로 단계를 되뇌며

서툴게 옷을 뒤집어 내었다.


울면서 "아빠 나 잘했지?" 하는 녀석을 보며

다시 제정신이 돌아온다.

녀석을 안고 같이 울먹인다.

"아빠가 밉지? 아빠가 소리 질러서 밉지?"

"아빠 이제 기분 괜찮아? 그럼 사과해~"


나름의 생존법이리라.

아빠가 화를 낼 때는 어차피 대항이 안된다.

누그러진 말로 자기한테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린다.

아빠 화가 가라앉은 것일 테다.

이제부터는 다시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해도 된다.

장난도 하고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나이만 들었지 얼떨결에 부모가 되었다.

부모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이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진심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한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는 부모를 훨씬 더 아끼고 사랑하며 또 의지한다.

그래서 부모가 쉽게 화를 내도, 아이는 쉽게 부모를 용서하고 부모와 먼저 교감하려 한다.

어른이라고 아이보다 마음이 성숙한 건 아니다.

아이가 더 낫다.

아이가 훨씬 더 낫다.


세상을 평범하게 사는 게 늘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녀석이 없었으면 더 어렵고 힘들었을 것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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