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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n 30. 2021

#2 아빠ㅠㅠ 예쁘게 말해주세요ㅠㅠ

콩이는 울먹이고 아빠는 미안하다.

"아빠 예쁘게 말해주세요 ㅠㅠㅠㅠ"


버럭쟁이 아빠가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는 기미가 보이면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예쁘게 말해달라고 울먹인다.


소통능력이나 인지능력이 많이 부족한 우리 콩이가

혹여나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발달센터 선생님이 화를 낼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기에

누군가 큰소리로 화낼 때 쓰라고 가르친 말이었다.


그러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거의 아빠에게만 쓰는 말이 되고 말았다.

콩이에게 화를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아니 사실 콩이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아빠뿐인 것 같다.


참 별거 아닌 걸로 화를 낸다.

수박씨를 집어 먹는다고 화내고, 눈 비빈다고 화내고, 치약 흘린다고 화내고...

1분만 지나고 보면 전혀 화 낼 일이 아니다.

대항력 없는 어린아이 앞에서 보이는 어리석은 선택적 분노장애일 뿐이다.

그런 아빠한테 예쁘게 말해달라고 울먹이는 콩이를 보며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미안함에 눈물이 차오른다.


아빠는 미안함과 자책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콩이는 또 금세 잊어버리고 아빠를 용서하고 까르륵 장난을 친다.

미안하다.

한편으론 불안하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때문인지 너무 쉽게 잊어먹고 너무 쉽게 용서해 버리는 걸까.

어쩌면 잠재의식에 아빠의 어리석음이 새겨지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어른은 쉽게 화내고 아이는 금방 용서한다고 쓴 글을 본 것 같다.

아빠는 쉽게 화내고 혼을 내고, 아이는 울고 또 금세 용서한다.

이 무슨 삶의 모순된 부조화인가.


오늘 밤에도 콩이는 아빠한테 혼이 났다.

10시가 넘은 밤에 너무 크게 말한다는 이유다.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혼나고

아빠 예쁘게 말하세요 하면서 울먹였다.

아빠는 자책하고 사과하고 우리는 화해하면서 잠들었다.


콩이는 콩이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지그재그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분에 물 주고 사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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