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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n 29. 2021

#1 우리동네에서 놀아요

놀이터와 공원은 느림보 우리 딸 발달연습터입니다

2021년 7살이 된 우리 콩이는 느리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겪고 있는 아동들이 으레 그러하듯

또래에 비해서 느린 정도가 아니고 2~3살 어린 동생보다도 느린 부분이 많다.

대근육 발달이 느리다 보니 6살이 되어서야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내려올 수 있었다.

7살이 되어서야 손잡이 없이 내려오는 게 가능했다.

꼬꼬마들도 빠르게 잘 타는 킥보드나 보조바퀴 자전거도 아직 거북이걸음 정도이다.

소근육 발달이 느려서 7살이 된 지금도 연필이든 숟가락이든 주먹 쥐고 잡는 것 밖에 안된다.

지퍼나 단추 잠그기는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 콩이는 눈과 손 협응이 잘 안된다.

7살짜리 아가씨에게 기본적인 점선 따라 긋기도 어렵다.

동그라미나 네모 같은 간단한 도형 색칠하기도 콩이에게는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시선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빨래 더미에서 자기 옷 찾는 것도 어렵다.

옷이나 양말을 개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우리 콩이는 친구들이 영어를 배우네 태권도를 배우네 피아노를 배우네 하는 동안

평일에는 치료실에 가서 감각통합치료작업치료니 언어치료니 하는 여러가지 치료받는다.

주말에는 치료실을 떠나 아파트 놀이터나 근처 공원으로 간다.


콩이에게 놀이터와 공원은 감각통합치료실과 다를 바 없다.

줄사다리, 계단, 암벽을 통해 미끄럼틀을 오르는 것은 놀이임을 떠나 대근육을 발달시키고 눈과 손 협응을 연습하는 훈련이다.

그네를 타면 전정기관이 발달하여 몸의 평형감각과 운동능력이 향상된다.

안타깝지만 그네는 무서운지 아직도 아주 싫어라한다.


공원의 울퉁불퉁한 길을 넘어지지않고 걷는 것은 눈과 발 협응을 연습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파른 언덕배기를 오르고 내리는 것은 대근육 발달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 있는 발달을 돕는다.

시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내 발이 닿는 거리와 내딛는 힘을 가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다행히 콩이가 사는 동네에는 놀이터와 공원이 많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깔끔하고 잘 관리된 놀이터 3군데가 있다.

콩이가 이름 짓기로 놀이터 미끄럼틀에 숫자 10이 적혀 있는 '10번 놀이터', 미끄럼틀에 커다란 당근 모형이 달려있는 '당근 놀이터', 역시 미끄럼틀에 소방차와 119가 적혀있는 '119 놀이터'다.

우리 콩이는 항상 차례차례 3군데 놀이터를 모두 들르고 옆 단지 놀이터도 2~3군데 순회한다.

대개 아빠랑 놀려고 하지만 어쩌다 콩이를 알아봐 주는 친구가 있으면 만면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친구 뒤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제 녀석보다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우리 콩이를 내치지 않고 어울려 놀아주는 몇몇 친구가 정말이지 고맙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공원도 여러 군데다.

어울림공원, 물새공원, 두레뜰공원, 과수공원.. 이름도 예쁜 공원들이 금곡천이라는 작은 개울하천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과수공원에 왔어요


처음에는 계단 아닌 통로로는 미끄럼틀을 올라가는 것도 버거워하던 아이가 어느덧 요래 저래 자유롭게 미끄럼틀을 오르내린다.

킥보드를 타고 놀이터 사이를 오가는 것도 제법 능숙하다.

물론 교차로에서 다른 킥보드나 자전거를 탄 녀석들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아직 익숙지 않다.


공원의 가파른 언덕을 씩씩하게 올라간다.

물론 가끔씩 넘어져 구르기도 해서 아빠는 콩이에게 눈을 뗄 수 없다.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것은 콩이에게 아직도 상당한 모험이다.


공원의 다채로운 식물들은 콩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콩이는 민들레꽃을 좋아하고 민들레 씨앗을 아주 좋아한다.

어떤 날에는 보이는 족족 꺾고, 씨앗은 후 불어 날린다.

손가락을 움직여 꽃을 꺾는 것은 소근육 발달에 좋은 것이요, 민들레 씨앗을 후 불어 날리는 것은 입근육을 움직여 언어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한다.


콩이는 또 참새와 종달새 같은 공원의 새들을 좋아라 하고 콩콩 뛰어 피할 뿐 멀리 날아가지 않는 까를 아주 좋아라 한다.

새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눈으로 몸으로 좇는 것은 시지각과 협응 능력 발달을 위해 좋은 것이요, 까치를 쫓아 잡으려 하는 활동은 시지각과 협응은 물론 공간 파악 능력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 한다.


물을 좋아하는 콩이는 금곡천의 징검다리들 좋아라 한다.

어린아이가 뛰어 건너기 좋게 만들어 놓은 금곡천의 평평한 징검다리들은 7살 콩이가 힘겹게 해내는 장애물 코스이다.

이 녀석은 7살이 되면서 비로소 징검다리 건너기를 시도했다.

개울가 계단을 성큼 내려가 징검다리 첫째 칸에 서서 호흡을 내뱉으며 잠시 눈으로 거리를 계산한다.

가까운 바위까지 씩씩하게 건너고 중간 거리의 바위까지는 약간 후들거리며 건너고는 마지막 바위에서 머뭇거린다.

혼자서 내딛기엔 거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모양이다.

아빠 손의 도움을 구해 폴짝 건너 간다.


아이가 징검다리 앞에서 눈으로 거리를 재고, 내 다리가 닿을 수 있는지 가늠하고, 힘껏 발을 내딛는 것은 눈과 발과 다리와 몸의 균형감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차원의 감각통합활동이다.


물론 콩이 집 밖에서 이렇게 노는 것을 치료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 어린 녀석에게는 아빠랑 같이 하는 재미있는 놀이일 뿐이다.

치료실과 더불어 이런 자연환경에서 놀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감사히 생각한다.

콩이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놀이터나 공원에서 콩이가 하는 활동들을 치료의 틀로 볼 필요가 없는 날이 오겠지 기대한다.

또래 아이와 비교하며 실망하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콩이를 보며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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