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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n 29. 2021

[프롤로그] 자폐스펙트럼을 만나다

버럭쟁이 아빠와 느림보 딸이 함께 하는 인생여정

콩이는요♬ 똑똑하고요♪♪

콩이는요♬ 예쁘고요♪♪

콩이는요♬ 공부도 잘해요♪♪

콩이는요♬


우리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지어 불러주던 노래가 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박자를 빨리하여 재미있게 부르고, 잠을 재울 때는 느리게 자장가로 불러주던 노래이다.

아이에 대한 바람이나 희망을 노랫말로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어 아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불러줄 수 있는 노래이다.

콩이는 이 노래를 ‘는요’ 노래라고 스스로 이름 지었고 특히나 잠들기 전에 듣는 것을 좋아했다.

노랫말처럼 우리 아이는 똑똑하고 뭐든 잘하는 줄 생각했고, 또 그렇게 자라기를 희망하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남들보다 아주 작게 태어났지만 남들 못지않게 무럭무럭 훌륭히 자랄 것이라고 믿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네 살 가을 무렵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서 뭘 하고 있나 창문 밖에서 잠시 관찰해보니 이 녀석이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 술래잡기도 하고 붕붕카도 타고 신나게 뛰놀고 있는데 이 녀석은 혼자 구석에 있는 대형 블록에 들어갔다 나왔다 만을 무료한 표정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외롭고 쓸쓸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선생님에게 확인하니 아직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울지 않고 혼자 잘 있어서 그냥 지켜보는 중이라고 하면서 당혹스러워하였다.


본능적으로 덜컥 겁이 났다. 바로 어린이집 양호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언어도 느리고 소근육, 대근육도 또래와 비교해 한참 늦는 것 같다면서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전문기관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직전 영유아 검진 때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한번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 소견을 대수롭지 않게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의 경우 예약 후 수개월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듣고 우선 급한 대로 주변에서 유명하다는 아동발달센터에서 발달검사를 받고, 곧이어 소아정신과에서 정식으로 검진도 받았다. 세상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청천벽력 같다는 게 이런 것인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말도 처음 알았고 아주 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이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언어 습득도 느리고, 사회성도 없고, 세상과 소통하기 힘든 아이.

촉각과 청각이 많이 예민한 아이. 믿고 싶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걸음마도 느렸고 말 트이는 것도 늦었고, 신체 성장도 느렸지만, 점점 자기 할 말도 하고 이제 미끄럼틀도 잘 타고 재롱도 피울 줄 알아서 잘 크고 있는 거로만 생각했다.

엄마 아빠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더 충격이 크고 더 겁이 났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것이 일반 질병처럼 전문병원에서 수술이나 약물치료를 해서 고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단기간에 어찌해 볼 수도 없고, 의사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해 주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부모로서의 아이에 대한 죄책감, 평소 믿지도 않았던 신에 대한 원망, 단란한 우리 가정에 이런 엄청난 시련을 던져주는 세상에 대한 분노.

대책 없고 무의미한 감정만이 내 안에 가득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이 상태를 알게 된 후부터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아이 현재 상태에 대하여 남에게 설명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게 어렵고 싫었다.

일상적인 육아 고민을 나누는 회사 동료들 간의 대화에도 더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이 더없이 하찮게만 느껴졌다.

사회관계 자체가 우리 아이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과의 교류만으로 한정되어 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콩이는 어린이집보다는 아동발달센터나 치료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다행히 집 근처에 이러한 센터가 제법 있었다.

언어치료, 놀이치료, 미술치료, 감각통합치료, 음악치료, 인지치료....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치료들을 빼곡히 채워 일주일 시간표를 짰다.

친절한 치료사 선생님과 1:1로 진행되는 수업에 콩이는 쉽게 적응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은 자기랑 말도 안 통하고 어떤 상황 속에 있는 건지도 파악 안 되는 어린이집 생활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매일매일 마음이 아팠다.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울었다.


아빠가 정말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우리 딸.

정말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매일매일 이런 말을 아이에게 했다.

그러나 서툰 아빠였다.

아이가 또래보다 너무 느린 모습을 보여줄 때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아이를 혼냈다.

그러다가 또 마음이 아팠다.

마음속으로 울고, 아이 앞에서 소리 내어 울고..

콩이보다 내가 더 문제구나.

내가 정신적으로 더 문제가 있구나.

자폐스펙트럼에 대하여 공부하고 먼저 경험한 부모들의 사례를 공유하면서 내가 먼저 변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일상이 콩이의 발달치료와 연계되었다.

놀이터는 감각통합치료를 위한 치료실이 되고, 시냇가 징검다리는 눈과 발의 협응을 연습하는 곳이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영상통화는 언어치료가 되고, 2~3살 더 어린아이들이 볼 법한 동화책 읽어주기는 인지치료가 되었다.

그러면서 콩이랑은 매일매일 싸우고 혼내고 또 화해하는 것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아빠 자격증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콩이랑 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하면서 느낀 건 우리 딸이 발달이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결국 자기 속도로 크고 있는 것이다.


콩이에게 ‘남들처럼 빠르게 할 필요 없어’라는 말을 가르쳐주었다.

콩이는 아빠의 이 말이 맘에 들었나 보다.

여러 상황에 응용해서 써먹는데 난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놀이터에서 그물 사다리를 올라가면서 ‘아빠 다른 애들처럼 빨리 올라갈 필요는 없는 거죠?’라고 말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동네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아빠, 콩이는 저 언니처럼 빠르게 건널 필요는 없는 거 맞지?’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딸이 참 예쁘다.

좀 느려도 거북이처럼 달팽이처럼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 때 인가는 친구들 꽁무니는 따라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우리 아이 발달 훈련은 매일매일 진행형이다.

언제까지 현재 진행형 일지 모른다.

여러모로 나아지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또래 아이들이 뛰어가는 수준이라면 콩이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정도이다.

아쉬움이 너무 크지만 어쩌겠는가.

부모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야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콩이가 세상에서 버림받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갈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 스스로 성장해야 할 몫도 있지만, 부모로서 오롯이 해주어야 할 역할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지지치 않아야 한다.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성장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열심히 해 보려고 한다.

열심히 놀아주고 열심히 아껴 주고, 열심히 다독여주고 열심히 사랑해 줘 보려고 한다.

평범하지 않음에 절망하지 않고, 앞서 가본 사람이 없는 길

우리 딸 손 잡고 뚜벅뚜벅 걸으면서 행복하게 가보려고 한다.


콩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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