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는 안데스의 설산과 드넓은 태평양 사이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거대한 사막, 그런데 어떻게 바다 바로 옆에 이렇게 거대한 사막이 존재하는 걸까.
워낙 신기한 지형이라 원인을 찾아보니 한류가 흐르는 해안의 기온이 낮아서 하강기류가 만들어지다보니 바닷물은 증발이 되지 않고 비 구름이 형성되지 않는단다. 건조한 바람은 내륙으로 흐르고 비가 극히 적게 내리니 대지는 사막이 되었다고 했다. 대자연의 신기는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오묘하고 위대한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신기하고 위대한 사막을 보기 위해 리마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짐을 챙겨 크루즈 델 수르(CRUZ DEL SUR)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페루는 지형 특성상 버스노선이 아주 잘 발달된 나라이다. 그래서 페루의 여러 지역을 이동할 때에는 주로 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페루에서 이카까지 가는 노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크루즈 델 수르라는 버스회사의 교통편이 가장 안전하고 편하다고 했다. 좌석은 우리나라의 우등버스보다 조금 더 좋은 정도랄까.
버스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장거리 운행이 많다 보니 좌석에는 멀티비전이 설치되어있고 뒤쪽에는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다. 심지어 승무원이 기내식까지 챙겨주니 이만하면 버스로서는 호화롭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기내식을 받아 들었을 때 식판에 담긴 것을 보고는 수용소에 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창밖으로 지나쳐가는 사막과 바다를 보면서 기이한 지형을 직접 마주하니 대단히 흥미롭고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8시간쯤 달렸을까. 이카의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고속터미널에서 내려 짐을 찾고선 주변을 둘러보니 터미널의 입구와 주차장 한편에 택시와 운전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는 툭툭이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운전사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꽃보다 청춘! 유희열, 이적 나 알아. 우리 친해.'
떠듬떠듬 한국말로 유희열과 이적을 잘 안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는 자기 택시에 타라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국에서 온 나보다 유희열과 이적, 윤상들을 더 잘 알고 친하다고 얘기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입 밖으로 조금씩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크게 터진 건 이 뒤에서였다.
우리에게 온 택시운전사 말고 근처에 있던 택시 운전사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부 자신들이 꽃보다 청춘 멤버들과 친하다고 얘기를 하며 자기들의 택시를 타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유희열, 이적, 윤상은 얼마나 많은 택시 운전사와 친분을 쌓은 걸까.'
아마도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카를 찾아온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새로 생긴 영업방식이었나 보다.
우리는 처음 말을 건넨 운전사의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와카치나 마을로 향했다.
며칠 동안은 와카치나 마을에서 묵어가기로 결정했다.
와카치나는 이카의 거대한 사막 속 오아시스 마을이다. 생각보다 훨씬 큰 마을로 세계 각지에서 이곳에 모래사막의 샌드보딩과 버기카 등 휴양과 익스트림을 즐기러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사실 이 와카치나 마을과 호수는 페루 정부에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 인공호수 마을이다. 지금의 와카치나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주 작은 오아시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원래 자연적으로 생긴 오아시스는 바로 이곳이었다. 아주 오래전 이곳으로 많은 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여행자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사막 속의 낙원이었으나, 계속된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사막화의 진행으로 오아시스는 점차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이에 페루 정부는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와 인공호수를 만들고 마을을 만들어 사람들을 거주시켰고 현재는 여러 가지 관광사업 등을 통해 여행자 마을이 되었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골목길을 돌아 수영장이 있는 호스텔로 들어섰다.
거대한 사막 속 오아시스 마을에서 수영장이 있는 숙소라니! 그것만으로도 꽤나 이국적이고 낭만적이다.
우리는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왔다. 숙소 바로 옆으로 와카치나 에서 유명한 맛집이라 소개받아 간 곳은 '데저트 나이트'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양념치킨 때문이었다.
페루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 간이 센 피자나 샌드위치 빵, 파스타 같은 것들만 먹다 보니 데저트 나이트의 양념치킨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남미 여행을 포함해서 그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알게 된 것은 외국에서는 치킨이 들어간 메뉴는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파는 후라이드나 양념치킨 같은 메뉴들은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치맥(치킨에는 맥주가 진리!)에 맛 들여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니까.
사막의 한가운데인 와카치나에서 먹는 양념치맥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리마로, 리마에서 와카치나로 이동하면서 쌓인 여독이 눈 녹듯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어느덧 날은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맥주 한 병을 들고 수영장 옆으로 있던 비치베드에 누웠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이내 밤이 되니 하늘에는 그동안 본 적 없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이런 밤하늘은 평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