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니 날이 흐리다. 와카치나에 온 뒤로 하늘은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했다. 심지어 간간이 가랑비가 내리기도 한다.
'사막에 비라니..'
사막에서 만나는 비는 굉장히 특별하고 중요하다. 특히 이카사막은 한냉 기류로 인해 비가 아주 적게 내리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오는 모습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내리는 비는 사막의 생물과 식물에게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생명수인 셈이다. 그런 비를 나는 와카치나에서 만났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여태껏 수많은 여행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국내든 해외든 어디론가 떠나기만 하면 여지없이 여행 중에 비가 내렸다. 때로는 폭우를 만나기도 하고 태풍을 만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편안하거나 쉬운 여행은 한 번도 없었지만, 모든 여행들이 특별했고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왔다. 어쩌면 나는 비를 부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막에서조차 비를 내리게 하니.
계속해서 비만 내리던 것은 아니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며 오락가락했다.
오후쯤 되어 미리 예약해 두었던 버기카 투어를 하러 일행들과 함께 와카치나 외곽에 있는 사무실로 갔다. 직원은 명단을 체크하더니 차고 쪽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차고에는 몇 대의 버기카들이 있었고, 세워진 버기카 중 하나에 탑승하라고 했다. 9인승으로 된 버기카에 타고서는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버기카 투어를 할 때 사막의 모래와 흙먼지가 얼굴로 다 튄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미리 준비해 두었었다. 함께 온 일행들은 버기카에 탑승을 했고 뒤 이어 온 외국인 몇 명이 뒷좌석에 앉는다. 잠시 후 버기카 가이드가 와서 시동을 거니 9인승의 커다란 버기카는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덜컹덜컹 거리며 이카사막의 모래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버기카는 샌드 보딩과 함께 이카사막의 가장 유명한 즐길거리 중 하나이다. 이 액티비티 투어를 즐기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버기카를 타기 전까지는 만해도 그냥 차를 타고 사막을 관광하는 투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그저 단순한 드라이브가 아니었다. 버기카는 좌우로 극심하게 흔들리며 모래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점프해서 쿵 떨어지기도 했다. 쉴 새 없이 흔들리며 부드러운 모래사막을 미끄러지듯 달려 나간다. 마치 사막에서 즐기는 롤러코스터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버기카가 세게 흔들릴수록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 크게 터져 나왔다. 지금껏 여행하며 타봤던 버기카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한 참을 달리던 버기카는 꽤 높은 모래언덕 위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로만 이루어진 사막. 곱디고운 모래 언덕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사막에 내가 서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버기카를 운전하던 가이드는 차에서 내리더니 버기카 뒤에 실어놓았던 보드를 꺼내어 한 사람씩 나눠 주고는 아무것도 없는 모래언덕 한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그를 따라 모래언덕으로 가니 그는 샌드 보딩을 타는 방법을 짤막하게 강습해 주고는 언덕 위에서 한 명씩, 한 명씩 아래로 내려 보냈다. 곧 내 차례가 되었다.
옆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언덕 위에 서보니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내 앞의 사람이 언덕 아래로 조그맣게 사라져 갔다. 나도 보드에 배를 깔고 엎드리니 가이드는 힘껏 보드를 밀어준다.
'쏴아아 아아아...'
모래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으아아 아..' 하고 괴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굉장한 속도로 순식간에 모래언덕 위에서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버기카와는 또 다른 스릴감과 쾌감이 느껴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액티비티 투어를 즐기는구나.'
세계 각지의 많은 여행객들이 이 곳 와카치나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면서도 다양하고 즐길거리가 많은 이 곳을, 여행자라면 놓칠 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니까.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몇 번이나 다시 올라가서 보드를 타고 내려오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날이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이카의 모래사막을 바라보니 그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움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붉게 물드는 이카의 사막은 뜨거운 정열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