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IMF를 기억하는 방법
영화 '타이타닉'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걸 기억하는지. 그 유명한 IMF 시대 혹은 IMF 사태의 한 중간이었다. IMF는 국제통화기금이라는 단체 이름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하나의 사건 그 자체로 기억된다.
IMF를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인데 나의 경우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그 한가운데 있다. 때는 바야흐로 1997년. 나는 세상에 불만만 가득한 중2병 도진 학생이었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등교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나라가 망했다고 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무신 나라가 망한 거지?라는 우리들에게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바닥 나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던가, 중2인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대충 우리나라가 빚을 졌는데 그걸 못 갚을 위기에 처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가 보다 정도 생각을 했다.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심각성을 알기에 우린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 삶에도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 갑자기 거리로 나앉게 됐다거나 끼니를 걱정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큰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부모님이 하는 가게가 더 어려워졌고, 학원을 더 이상 다니기 어려워졌고 독서실 같은 곳은 언감생심이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다 보니 가끔씩 돼지갈빗집에서 하던 외식의 횟수도 줄었겠지.
지금은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국민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며 집에 있는 금을 내놓는 이른바 ‘금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집 장롱을 뒤졌다. 이 금을 팔아 얼른 빚을 갚아 정상화로 돌아가자는 모든 이의 염원이 담긴 작은 물결이었다.
그즈음이었을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타이타닉’이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997년작으로 그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한 건 1998년 초였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타이타닉’을 보면 어렵게 금을 모은 일이 다 도루묵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티켓값으로 거둬들인 수익이 달러로 바뀌어 미국으로 다 넘어가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굉장히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인 배우 디카프리오가 한국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을 했다는 루머도 번졌다. 말 그대로 루머였지만 급기야는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타이타닉을 보면 일종의 매국노가 되는 그런 분위기 속 어린 나 역시 너무 보고 싶어 죽겠는 마음을 접으며 나는 절대로 ‘타이타닉’을 영화관에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화적 자유냐, 애국심이냐 하는 대단한 고민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불타는 애국심도 아니었을 테고 그저 나라에 대한 일종의 ‘의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국내에서 개봉한 타이타닉은 무척 인기였다. 영화를 본 이들의 으스대는 리뷰를 들으면 보고 싶은 마음 반, 이런 매국노 같으니라고 싶은 분노의 마음이 반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보지 않고 꾹 참고 또 참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분노의 마음도 의리의 마음도 희석될 즈음이었을까. 나 빼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다 타이타닉을 본 것 같아 도무지 보지 않을 수가 없을 즈음 부산의 어느 작은 영화관에서 ‘타이타닉’을 봤다. 충격적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니. 진짜 미국 영화는 스케일이 다르구나 했다.
그런 타이타닉이 2023년 개봉 25주년을 맞아 재개봉을 했다. 무려 4K 3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말이다. 사실 재개봉이 처음은 아니지만 관객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재개봉 첫 주에만 15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재개봉 외화 최고 기록을 다시 써 내려갔다.
이미 봤고, 무료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지만 이미 본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 가서 다시 보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역시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말의 방증, 무엇보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오래전 본 인생 영화를 다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길다가 우연히 만난 뜻밖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명작은 영원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