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국이 싫어서'
이게 그렇게 꿈꾸던 대학생활의 전부인가, 이게 ‘젊음’이란 말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등 삶에 대한 갖가지 질문이 엄습해 오던 20대 초반의 일이다. 일단은 잠시 멈추고 떠나고 싶었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향했다. 외국병에 걸려있던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만 싶었는데 유학을 떠날 형편은 안 되고 교환학생이라도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 되고… 아마도 그런 현실 안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것 같다. 비자를 받기가 그나마 수월했고 물가도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여타 영어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했으니까. 정반대의 계절을 살고 있는 호주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300만 원 정도 모아 100만 원가량으로 왕복 비행기 티켓을 끊은 뒤 나머지를 초기 정착비로 쓰기로 하고 무작정 떠났던 것 같다. 무모해서 용감한 스물세 살이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겠지.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동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원작이다. 소설은 호주로 떠난 여자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 호주로 떠났는지, 호주에서는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변했는지. 영화에서는 설정이 호주 옆나라 뉴질랜드로 바뀌었다.
영화를 보면서 스무세 살이던 나의 워킹홀리데이 시절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호주에 정착하자마자 어학원을 끊은 뒤 그곳에서 사귄 친구 덕분에 일식당에서 일할 자리를 구했다. 한국인이 주인인 곳으로 나는 일하는 시간 내내 일본식 김밥(요즘말로 하면 후토마키)을 말거나 월남쌈을 쌌다. 생활에 익숙해지고 영어가 조금 늘기 시작하면서 간단한 손님 응대도 했던 것 같다. 영어가 늘었다기 보단 접객용 표현 일부에 익숙해진 정도였겠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을 하고 틈이 나는 대로 여행을 다녔다. 워킹(working)이 아닌 워킹(walking) 홀리데이인 것 같다는 농을 할 만큼 주야장천 걸어 다녔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주변 도시와 나라를 여행했다.
그러다 또 돈이 떨어지면 일을 구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또 여행을 했다. 농장에서도 일을 했는데 복숭아며 오렌지며 콩도 땄다. 시간당 돈을 벌기도 했고 수확한 만큼 돈을 벌기도 했는데 후자는 몸이 축났다. 그래도 한국에 비해 높은 페이를 준다고 생각하면 일하는 게 무척 즐거웠다. 또래의 친구들과 모여 새벽부터 농장에서 일한 뒤 허름한 숙소에 둘러앉아 한국에서 살던 이야기며 앞으로 꿈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누구는 어서 돈을 벌어 제대로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학비를 벌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나처럼 돈을 버는 족족 여행으로 써재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호주에서 영주권을 따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한국 직장생활이 힘들어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당시 20대 초반의 내 눈엔 곧 서른을 앞두고 호주로 와서 이렇게 농장생활을 하는 그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처럼 한국의 현실에 부대끼며 살다가 ‘번아웃’이 와 현실을 내팽개치고 쫓기듯 호주로 날아왔던 게 아닐까.
그곳에서 나는 늘 뜨내기였다. 마음만 먹으면 (하도 끌고 다니느라)발통이 덜그럭거리는 캐리어와 배낭 하나에 짐을 넣은 뒤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방인. 초기에 정착했던 두 아이를 키우는 한국인 가정의 홈스테이 집을 시작으로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도시에도 살고 농장의 캐라반에서도 살았다. 다른 가족이 사는 와중에 방 하나를 내어준 공간에서도 살고, 임대인 집을 쪼개어 재임대하는 방식의 집에서 남녀외국인 할 것 없이 한 데 섞여 살기도 했다.비싼 집세 탓에 남녀불문, 국적불문이었고 거실이며 베란다까지 셰어 하며 좁디좁게 살았다.
룸메이트들은 한 명씩 들고나고 했고 환영회, 송별회 같은 이름으로 가끔씩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호주살이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곤 했다. 한국에 와서도 얼마간 연락하며 지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도 희미하다. 기억조차 희미하고 지금은 그 희미한 기억을 나눌 당시의 인연들도 온데간데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에서 살았던 경험은 내 20대를 떠올렸을 때 가장 큰 기억의 조각이다.
당시엔 영화에서처럼 먹고 나면 머리가 지독히 아픈 2리터짜리 비닐팩에 포장된 와인을 그렇게나 마셔댔다. 5불짜리 싸구려 와인이 그 시절의 숨구멍이자 낭만이었다고 하면 과도한 포장일까.
영화에서 계나는 “우리는 어쩌면 행복을 과대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사실은 춥거나 배고프지만 않아도,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