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때 아닌 논쟁을 했던 적이 있다. 가끔씩 하는 폭음이 나쁜가 매일 술을 먹는 반주 습관이 나쁜가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간헐적 폭음이 훨씬 더 나쁘다는 편에 섰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인류 역사상 가장 장수한 여성으로 유명한 잔 칼망 할머니도 1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와인을 즐겼다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슬기로운 음주생활을 자신하던 내가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건강검진 시 의료 물어보는 질문인 음주 횟수에 실제 습관대로 주 5회 이상으로 체크를 한 게 나의 실수였다. 음주 횟수가 너무 잦아 알코올 중독이 우려되니 술을 줄이라는 식의 소견이 적혀있었던 것이다(다행히도 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이라니.
‘나는 내가 음주를 자제할 수 있고, 끊어야 한다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고!’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스웨덴 코펜하겐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 체육, 심리학, 음악을 가르치는 4명의 친구들이 술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을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지루한 교사, 더 이상 매력 없는 남편, 재미없는 아빠가 되어 버린 이들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낸다.
“내가 지루해?”라는 질문에 “그건 모르겠지만 옛날 같진 않아”라는 대답으로 응수하는 아내, ‘나는 당신에게서 더 이상 매력을 못 느껴’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음악 교사인 니콜라이의 마흔 번째(이제 겨우 마흔 살인데!)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심리학 교사인 페테르가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활발하고 창의적이 된다’는 노르웨이의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흥미로운 가설을 말하며 재미난 제안을 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의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 이 상태가 유지되면 더 느긋해지고 침착해지고 음악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한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자신감이랑 용기가 더해지면 좀 더 대담해질테고 인생의 즐거움이 찾아오지 않겠냐는 것. 대신 저녁 8시 이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음주 실험을 해나가는 이들의 생활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지루했던 수업에 위트가 더해지며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보이고, 소원했던 부부관계도 되찾았으며 아이들과도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잊었던 가족의 온기를 느낀다. 실험이 효과를 보이자 술을 먹은 뒤 바로 개인 음주측정기를 들고 다니면서 타이트하게 진행하던 이들의 실험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끝까지 가보자’는 그들의 마지막 실험은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남긴다.
그래서 술이 나쁜 거냐고? 영화는 단순이 술에 관한 찬반, 음주의 해악성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청춘을 지나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권태, 외로움을 헤쳐나가는 성장통을 음주에 빗대었을 뿐 결론은 간헐적 쾌락이 아닌 상시적인 비쾌락 상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실하고 꾸준하게 살아내야 한다.
여전히 나는 간헐적 음주파가 아닌 간헐적 금주파다. 앞으로도 건강한 매일 음주파가 되기 위해 1년에 몇 번씩 짧게 일종의 나만의 금주기를 두기로 했다. 매년 찾아오는 건강검진 때 음주 횟수를 묻는 질문엔 약간의 거짓말을 하기로 한다. 주 2~3회 정도로 타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