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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Mar 17. 2024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감정 이야기 [5]

  건강한 마음을 위한 소식지, 누스레터입니다. 지난 소식지에서는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려고 했더니 첫 단계부터 삐거덕거리신다고요? 특히 감정을 자각하려다가도 “내가 고작 이런 기분 때문에 힘들다니”라고 생각하신 분들이라면 주목해 주세요. 오늘은 감정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정하면 지는 거다?

  어떤 감정들은 취약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슬프거나 두려울 때에는 왠지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 된 것만 같지요. 울고 있는 자신이, 떨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발표할 때 유독 불안하신 분들 계신가요? 물론 발표 자체도 큰 부담이겠지만 저변에는 “내가 긴장한 모습을 들킬까 봐" 더 불안한 마음이 있을 거예요. 목소리가 떨리고 볼이 벌게진 모습이 남들의 눈에 지질하고 우스꽝스럽게 비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죠. 안 그래도 긴장이 되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 쓰려니 더 불안해서 결국 발표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사회불안장애에서 흔히 관찰되는 양상이에요.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못나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건 인간의 본능인 듯해요. 못났다는 건 생존에 불리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감정을 인정하면 못난 건가요? 아니요. 그건 감정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감정을 하찮게 보는 문화권에서는 억제하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오해하기 쉬워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배운 사람은 슬퍼 마땅한 순간에도 눈물을 흘릴 줄 모르게 되지요. 온순함만이 미덕인 줄 알고 자란 사람은 정당한 분노를 통해 자신을 지킬 줄 모르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못난 모습은 오히려 감정을 인정하지 못할 때 더 많이 나타납니다.  


인정하면 무너질까?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에는, 감정에 압도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데, 감정을 마주하면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힘마저 사라질 것 같거든요. 감정을 인정함으로써 불어닥칠 변화를 받아들일 자신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사이에 오래 묵혀둔 갈등은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쉬쉬하며 덮어지곤 해요. 괜히 그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봤자 여러 감정들만 폭풍처럼 휘몰아칠 테고, 그럼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던 관계조차 깨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인정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다른 모습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걸핏하면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받은 모습이 자리할 수도 있습니다. 취약함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분노의 힘을 빌려서라도 꼿꼿이 서있는 편이 낫기 때문이죠. 물론 이러한 과정은 대개 무의식적이므로 당사자가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분노 역시 다른 가면을 쓸 때가 있습니다. 관계가 틀어질까 봐 차마 드러내지 못한 원망은 수동 공격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화나지 않았다면서 은근히 비아냥대거나 상대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요. 포장지가 두꺼울수록 그만큼 핵심에 접근하기도 어렵습니다. 감정의 둔갑술이 너무나 절묘하기 때문에 남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깜빡 속아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감정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불안은 경보음을 울려서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게 합니다. 수치심은 잠시 뒤로 숨어들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평가나 사회적 거절로부터 우리를 지키지요. 슬픔은 충분히 울고 위로받은 뒤에야 회복됩니다. 감정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나는 지금 불안하다, 부끄럽다, 슬프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충분히 인정받은 감정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흘러갑니다.


p.s/ 정신 건강에 대해 궁금하신 점을 댓글로 적어주시면 누스레터로 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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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us는 그리스어로 정신, 마음의 태도를 뜻합니다.

**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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