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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Mar 24. 2024

감정은 우리를 돕는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감정 이야기 [6]

건강한 마음을 위한 소식지, 누스레터입니다.

지난 소식지에서는 감정을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이렇게 감정은 인정하기도, 조절하기도 어려운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정은 우리를 돕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감정이 지닌 좋은 기능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감정은 행동하게 합니다.

  뜨거운 여름날, 며칠 묵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열었을 때 더운 습기를 타고 확 풍겨오는 악취를 떠올려보세요. 아마 상상만으로도 미간과 콧등을 찌푸리며 상체를 뒤로 젖히셨을 거예요. 반면 빵에 버터를 발라 노릇노릇하게 굽는 냄새를 맡으면 어떤가요? “음~” 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들이쉬겠지요. 버터와 함께 녹아내린 듯 나른한 표정을 하고서요.


  대개 사람은 해로운 것으로부터는 멀어지려 하고, 이로운 것에게는 다가가려 합니다. 송곳니를 드러낸 채 컹컹 짖어대는 사냥개를 마주치면 두려움이 발동합니다. 그래서 잽싸게 몸을 숨기는 행동을 하지요. 하지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설렘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서로의 품에 와락 안길 테지요. 누구도 둘을 멀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감정은 어떤 방향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이런 걸 행위 경향성이라고 불러요. 


2. 감정은 판단합니다.

  흔히들 판단은 사고의 전유물이라고 여깁니다. 가능한 선택지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경중을 따져본 뒤에, 더 가치 있고 더 유익한 쪽으로 결정할 거라 믿지요. 물론 이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온전히 생각만으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봄이 되면 왠지 산뜻하고 화려한 문양이 끌려서 꽃무늬 치마를 사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엔 괜스레 기분이 꿀꿀해서 집에만 머물기로 하지요. 좀 더 당기는 음식을 먹고, 좀 더 끌리는 전공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직감을 따른다고 느끼는 일들은 대부분 감정이 판단 기능을 발휘한 경우입니다. 


  감정은 중대한 결정에도 관여합니다.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에게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감정이 상했다는 점입니다. “저 인간이랑은 도저히 못 살겠다"라는 말속에는 사실 숱하게 기대했다가 실망한 마음이 있습니다. “너 없이도 보란 듯이 잘 살 거야"라는 다짐은 의존적 관계를 청산하고 차라리 홀로서기하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굳은 결심으로 이혼 절차를 검색해 보다가도, 웅크린 채 잠든 배우자의 뒷모습을 보면 그렇게 짠할 수가 없어요. 마음이 다 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짠하니까 그냥 좀 더 살아보기로 합니다.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고 이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다가, 고작 짠한 마음에서 그걸 다시 번복하다니요. 어이가 없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 어이없이 감정의 판단에 따르곤 한답니다. 


3. 감정은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합니다.

  감정은 소통의 기능을 지녔습니다. 얼굴 표정, 눈빛, 말투, 목소리, 제스처 등에 정서적 정보를 담아 보내면, 주변에서는 그 정보로부터 힌트를 얻어 여러분의 정서 상태를 추측할 거예요. 여러분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 정서에 걸맞은 반응도 적극적으로 해올 겁니다. 그럼 여러분은 존중받는다고 느끼면서 상대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테고,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친밀감이 싹트겠지요. 감정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를 연결함으로써 사회를 형성합니다.


  감정은 이미 형성된 사회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감사는 선행을 독려하고, 동정심은 약자를 돌보게 합니다. 분노는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고, 죄책감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교정할 기회를 줌으로써 다른 구성원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한때는 저도 감정은 질척거리고 방해만 되는 존재라고 오해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감정이 지닌 좋은 기능들에 대해 놀라게 됩니다. 감정은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가 그 도움을 받을 줄 모를 뿐이지요. 


p.s/ 정신 건강에 대해 궁금하신 점을 댓글로 적어주시면 누스레터로 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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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 레터(nous*-letter)는 마음의 전문가** 누스가 보내는 소식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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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us는 그리스어로 정신, 마음의 태도를 뜻합니다.

**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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