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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Apr 02. 2024

지키고 싶은 마음, 분노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감정 이야기 [7]

  건강한 마음을 위한 소식지, 누스레터입니다. 앞서 여섯 번의 누스레터를 통해 감정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왔습니다. 오늘부터는 개별적인 감정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볼게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분노입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화가 나시나요? 혼잡한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발을 밟혔을 때, 갑작스러운 동료의 휴가로 그 사람의 일까지 떠맡았을 때, 일은 내가 다 했는데 보고서 표지에는 상사의 이름만 올라갔을 때 등. 저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화가 나는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내 것을,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할 때 화가 난다는 점이지요.


분노의 특성

  분노는 주로 외부로부터 침해공격을 당했을 때 발생합니다. 여러분이 설정한 경계를 누군가 함부로 넘나들 때, 권리를 빼앗겼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에도 화가 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충분히 존중받기를 원하는데 이러한 욕구가 처참히 무시당하는 상황들이지요. 이럴 때에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방어하려는 욕구가 발동합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언성을 높여 힘주어 말하게 되지요. “물러서! 내 거 건드리지 마!”


  분노라는 감정은 외부로 빵 터질 듯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분출될 것만 같은 압력, 긴장감, 열기 등을 강렬하게 경험합니다. 실제로 분노는 싸움을 할 때와 비슷한 상태로 몸을 변화시킵니다. 호흡, 혈관, 근육, 얼굴 표정까지 모두 침입자에게 대항하도록 전투태세를 갖춰요. 이러한 느낌들은 분노를 묘사하는 언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뚜껑이 열린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폭발한다"와 같은 말들을 보세요. 모두 화살표의 방향이 외부를 향하고 있어요. 화가 났을 때 숨어들고 싶다던가 작아지는 것 같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없을 거예요.


  물론 화가 난다고 다 이런 모습은 아닙니다. 분노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거든요. 툴툴거리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모습부터 주변 물건들을 다 때려 부수는 격노까지 모두 분노의 선상에 놓입니다. 대인 관계에서 화가 나면 의존하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고픈 욕구를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친구들과 심하게 다툰 어느 날엔 욱해서 “너랑은 절교야!"라고 외치지요.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춘기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부모님께 심한 꾸중을 들은 날에 “에잇! 이놈의 집구석. 내가 나간다 나가!” 이러면서 패기 넘치게 가방을 쌌을 겁니다. 아마도 진짜로 가출을 원했다기보다, 관계를 잠시 멈추고 싶을 만큼 부모님께 화가 났다는 뜻이었을 거예요.


재채기보다도 감추기 어려운 화

  이렇게 힘이 센 분노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먼저 분노를 과도하게 억제하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는 어떻게 될까요? 재채기도 감추기가 어려운데 화는 오죽하겠어요.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반드시 화는 자기의 존재감을 티 냅니다. 아무리 미소로 포장해 봐도 그것은 썩은 미소가 되고 말아요. 언뜻 들으면 상냥한 말인 듯하지만 그 속엔 은근한 빈정거림이 담겨 있을 테고요. 상대의 요청에 침묵으로 일관한다거나, 약속된 사항을 계속 미루고 뭉개면서 상대의 속을 긁어놓기도 하지요. 이런 걸 전문 용어로는 “수동 공격"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대개 무의식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행위의 주체가 반드시 악의를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러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몰랐다는 사실이 모든 일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요.

  

  반대로 여과 없이 모든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매우 곤란합니다. 감정 조절이 미숙한 유아들은 몸을 뒤로 젖히고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동동 구르곤 합니다. 아직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으로 표출되는 거예요. 이런 걸 전문(?) 용어로 “땡깡"이라고 합니다. 사실 땡깡을 받아주는 건 자기 자식이라도 어려워요. 곁에 있으면 진이 빠지고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자식의 땡깡도 이런데, 하물며 다 큰 어른이 폭발적으로 자기감정을 쏟아낸다면 어떻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될 거예요. 그리고 폭발의 잔해를 피해 슬금슬금 그 사람의 곁에서 떠나겠지요. 그러니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면, 제 나이에 맞게 분노를 조절하고 타인이 용납할 수 있는 방식으로(대개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난 화가 났던 게 아냐

  분노가 여러 감정들과 얽히고설켜 있는 경우에는 핵심적인 문제를 알아차리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불안할 때 화를 냅니다.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 상황도 야속하거니와, 주변에 겁을 먹은 것처럼 비치고 싶지도 않을 테지요. 그래서 속내를 들키기 전에 미리 화를 내버려요. 이전 누스레터에서 다루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거든요[https://brunch.co.kr/@mindwalk-yj/63]. 여하튼 이러한 경위로 인해 이 사람의 핵심적인 감정은 불안임에도 겉으로는 그저 화가 난 것처럼 보입니다. 스스로도 혼탁한 감정 덩어리 중 그나마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에 속고 말아요. 그래서 자기는 불안한 게 아니라 화가 났다고 착각합니다.


  모든 감정들이 그러하듯 분노도 기본적으로는 좋은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mindwalk-yj/64 ]. 분노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스러지지 않고 굳건히 서도록 마음을 붙들어 줍니다. 시야를 조금만 확장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권리도 지킬 수 있습니다. 분노가 지닌 행동력을 잘 가다듬어서 제도적인 부조리를 개선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여러분의 감정을 보세요. 여러분의 분노가, 안하무인 독불장군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용사가 될 수 있도록.

                    

p.s/ 정신 건강에 대해 궁금하신 점을 댓글로 적어주시면 누스레터로 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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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us는 그리스어로 정신, 마음의 태도를 뜻합니다.

**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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