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유용할 시간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간 해 보지 않았던 요리들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조리법도 시간이 넉넉한 나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도전과제다. 그리고 별것 아닌 요리지만 수고를 조금 더 들여서 훨씬 맛있게 만들 수 있을 때도 주저 없이 부엌에 오래 서 있는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 않은 내게 카레는 이것저것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메뉴 중 하나다. 정말 뚝딱 만들 수 있고, 김치 정도만 곁들이면 한 상차림이 되는 이 요리는 특히나 밥하기 싫은 날 단골 메뉴 중 하나다. 그래도 뭔가 너무 뚝딱이다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은 양파를 오~래 볶는다. 30분이 넘도록 양파를 볶고 난 후 카레를 만들면 그 맛은 확실히 뚝딱 만든 것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보통 밥을 지을 때엔 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음악을 듣거나 다음 조리법을 생각하는 정도가 대부분인데, 양파를 볶는 시간은 유난히 길기도 하고 냄비 앞을 떠날 수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뒤적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점점 색이 변해가는 양파를 보다가 양파볶음이 결혼생활이랑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단단하고 동그랗고 하얀 양파가 썰려지고 볶이면서 점점 원래의 형체를 모두 잃어가고 갈색빛을 띠게 되는 그 과정이 흡사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모습들과 많이 닮아있지 않나 싶었다.
양파를 얼마간 볶고 볶고 볶다 보면 처음의 매운맛은 사라지고 예상치 못한 달달함과 감칠맛이 폭발하는 지점이 있다. 그 맛 때문에 몇십 분을 오롯하게 불 앞에 서서 달달 볶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내겐 결혼생활이 이런 느낌이다. 사실 결혼을 결심하고 실제 결혼생활을 시작할 즈음엔 이게 뭔지 잘 감도 오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삶의 패턴이 너무 선명해서 가끔 부딪히기도 한다. 지난한 시간들이 흐르고 나면 어느 순간 부부는 비슷한 결을 가진 전과는 다른 어떤 사람들이 된다. 얼마의 시간이 드는지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같은 공간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다가 힘들기도 한 시기를 겪고 나면, 양파의 감칠맛처럼 예상치 못한 둘만의 어떠한 지점에 놓이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이 무척 색다르고 좋다.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 관심을 쏟아야만 유지되고 변해갈 수 있는 묘한 지점이 주는 감동이 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아는 지인 또는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듣는 얘기가 있다. 두 분이 참 비슷하시네요. 매일 보는 남편이지만 내가 남편과 비슷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아서인지, 자주 듣는 그 말은 신기하게도 들을 때마다 약간 놀랍다. 흔히들 결혼생활을 지지고 볶는다고 표현하는데, 과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 걷어내고 보면 어느 정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결혼도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 지난 다음부터는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된다. 어느 밴드의 노랫말처럼 거칠게 말하자면 결혼 이후의 삶은 아주 높은 확률로 서로에게 실망할 일만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각자 다르게 살아온 30여 년의 시간을 한데 넣고 지지고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 중에는 눈물 나게 고맙고 감동적인 순간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지점에서 실망하고 감내하고 포용하는 시간들 또한 거치게 된다. 그 모든 게 한데 섞여 어느 순간 둘만의 케미가 자연스럽게 맞아 들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는 새 결혼생활이 내 일상의 바탕이 되어 흘러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결혼생활도 거창하게 보자면 큰 무엇이지만, 사소하게는 지금의 집합체다. 그래서 나눠먹는 카레가 조금 더 맛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양파를 오래 볶고 있었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이런 시간을 우연찮게 나에게 선사한 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