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 모두 밑반찬을 많이 찾는 편이 아니라 끼니마다 메인 요리 한 가지 정도에 김치면 충분히 한 끼를 먹는다. 한데 장조림은 다른 밑반찬과는 달리 고기반찬의 경계(?)에 있는지라 아~주 가끔 만든다. 가끔 만드는 이유는 물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인데, 능숙하다고 하기 어려운 살림 솜씨에 만들기 번거로운 과정을 감안하면 사 먹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선다. 하지만 여기에선 통조림으로 된 것 말고는 파는 곳이 없는지라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며칠 전 장조림을 만들었다. 두 시간 가까이 부엌에서 끓이고 찢고 졸이고를 거듭하여 한통의 장조림을 만들었고, 저녁상에 냈다. 한데 만들 때는 간이 적당하다 싶었는데 밥과 함께 먹으니 조금 싱거운 듯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 장조림이 밥이랑 먹기엔 좀 싱겁나?"
"응."
정말 별 것 아닌 대화였고, 없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남편은 당연히 싱겁다고 말했으며 대화는 끝났다. 싱겁지만 먹을만하다던가 싱거워도 괜찮다는 말은 내 기대가 만들어낸 것일 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내 남편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고 살지만, 가끔 실체를 마주하면 나도 멈칫하게 된다. 참으로 신기한 건 멈칫하지만 화가 나거나 싫지 않다는 것. 그 사람과 같이 사는 노하우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진심으로 그런 그가 나는 싫지 않다. 그저 없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생각'보다는 '사실'을 주로 말하고, 그래서 말수가 많지 않다. 처음부터 이러한 구석이 잘 맞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그의 방식이 가진 간결함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됐다.
본인 스스로가 내뱉는 말에 무게감을 싣다 보니, 내 사소한 말 한마디도 잘 놓치지 않는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상대가 하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고 귀담아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남편보다 훨씬 감정적이고 '생각'을 자주 내뱉는 편이라 기복이 크다. 이런 나와 사는 고충 또는 만족감은 그 사람만이 아는 것인지라 말로 하기 전까지 내가 남편의 생각을 알 길은 없다.
말 수가 적은 남편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됐다고 했을 때도 "수고하고~"라는 특유의 한마디로 마음을 전했다. 그게 응원인지 그냥 지나는 인사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현실보다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거나 평가절하하지 않는 딱 그 수준을 유지하는 남편이 나는 좋다. 전에 남편과 대화 중에 '도전의 성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아? 그게 더 낫지 않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티 내지 않았지만 적잖이 놀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로 또는 응원이라고 보내는 말이 어떻게 보면 부담이고, 은연중에 비춰내는 말하는 이의 속마음일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야 부정할 수 없지만, 오롯하게 듣는 사람의 입장만을 고려해본다면 실패해도 괜찮음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는 그랬다.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이나 시도를 하겠다고 했을 때 잘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에도 '응' 또는 '수고하고'라는 대답이 그의 전부였고, 나는 그 전부를 아주 느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서 단순히 좋다라기 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함께 든다. 오랜 시간을 나누면서 결국 내가 그를 통해 깨닫고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넓어질 수 있음이 참 고맙다. 어쩌면 까맣게 모르고 살아버렸을지도 모를 어떤 구석을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고 난 이후의 삶은 그 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사람이 그 사람이다. 무뚝뚝한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이 남편에 대해 좋게 말해도 흉볼 구석을 찾기 바빴던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반성한다. 자주 생각했지만 말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표현할 일도 적었던 마음을 글을 통해 전한다. 나는 내 남편인 당신이 참 고맙고, 좋고, 앞으로도 오래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