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던 다짐

by 예나

성향 자체가 절대라는 것을 그닥 믿지 않는 편이지만, 배우자만큼은 아빠와 절대 닮지 않은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을 선택하리라 고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석하게도 내 남편과 우리 아빠는 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둘은 묘하게 잘 통하고, 서로를 좋아한다. 결과가 이렇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결국 나는 아빠와 많은 구석이 '닮은' 사람과 살며, 사소한 일상 속 남편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조카들이 나의 아빠,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외할아버지인 그를 부르는 별명은 '준비맨'이다. 어린 기억에 우리 아빠는 저 멀리 아직 톨게이트가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지불할 동전과 통행권을 손에 쥐고 있었을 만큼 준비성이 남다른 분이었다. 그를 닮은 나의 남편 역시, 무엇이든 미리 한다. 그리고 사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싸울 일이 적고, 서로에게 잔소리할 거리도 많이 없다.


그러고 보니 처음 남편을 부모님께 소개하던 그 날부터 어색함이라곤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친근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자연스러웠달까. 서로에게 과하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고,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거나 필요 이상의 침묵이 계속되지도 않았던 기억이다. 어쩌면 처음 만난 날부터 그들은 서로가 비슷하다는 걸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뭐든 한 박자 느린 내가 이제서야 찬찬히 알아가는 중인지도.


아빠와의 통화에서도 나는 그닥 길게 할 말이 없는데, "진만이는 옆에 있니?"라고 시작된 아빠의 애정은 사위와 조잘조잘 끊이지 않는 수다를 이어간다. 말수가 적은 남편도 아빠 전화를 이어받자마자 빙그레 미소부터 짓는 걸 보면 나는 모르지만 분명 둘만 아는 코드가 있긴 한가보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난 후, 남편더러 아빠가 그랬다. "조서방 이러면 거리감 느껴지니까 이름으로 부를게. 괜찮지?" 그 한마디가 그냥 좋았다. 내가 선택한 가족을 받아들이는 아빠 나름의 방식도 역시 아빠답다고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일반적'이라는 기준이 있기는 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반적으로 나의 남편은 살가운 사위는 못된다. 게다가 한국을 떠나 있는 터라 자주 뵙기는커녕 전화 연락도 뜸하다. 전에는 이런 일반적이라는 기준을 채워주지 못하는 그가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에게는 나름의 애정을 전하는 방식이 있고,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한다는 것을. 그걸 알기 때문에 어제 아빠와의 길지 않은 통화에서 그가 짓는 미소가 좋았다.


아빠와 전혀 다른 사람을 찾겠다던 나는 이미 아빠를 닮아 있었고, 그걸 모른 채 가족을 찾은 나는 또 결국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맞이한 게 아닐까. 그래서 장인과 막내사위가 닮아있는 묘한 지금에 이르렀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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