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남

by 예나

얼마 전 남편의 학교 친구를 초대해 저녁을 먹다가 새벽까지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었다. 긴 이야기 시간만큼이나 다양한 화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많이 먹고 웃고 떠들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남편이 가족도 결국 남이다 라고 선언처럼 이야기했던 것. 일전에 나도 가족과 타인의 미묘한 구분에 대해 글로 써 본 적이 있다. 물론 날이 많이 서 있던 때이기도 해서 고운 시선으로 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 항상 쌓아두었던 주제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배우자라는 존재는 오롯하게 내 선택으로 맞이하는 가족이기에 결혼 후에는 그 생각이 더욱 짙어지게 마련이다.


배우자를 비롯해 가족도 결국 남인건 맞다. 사실관계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아니면 모두 타인이므로 가족도 타인이고 남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다만 심정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가깝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각별하기에 가족 앞에서 결국 남이 아니냐는 기준을 이야기하면 서운하거나 황당한 감정이 밀려오게 마련이다. 사람이니까. 누군가는 그러더라. 그래서 가족은 가장 가까운 남이라고 정의하자고.


'남'이라는 어감이 주는 거리감과 무관심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 때문에 가족과 이 단어를 함께 쓰면 혼돈이 생기거나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이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래도 남은 남이기에 가족이지만 적당히 무관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거니와, 가족이니까 모든 것에서 생각이 같고 함께 행동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것이다. 남편이 그 자리에서 한 말의 의도는 분명 남이니까 대충 적당히 해도 된다라기 보다는, 각자의 삶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게 현명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일 텐데. 남편 놀리는 재미가 붙어서인지 뭐라고 말을 걸어올라치면 남의사! 남의 일이라 잘 모르겠는데! 하며 되받아치곤 한다.


물론 심정적으로야 서운했다. 특히나 내 배우자처럼 혼자가 편하고 혼자 있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는 순간, 그럼 결혼은 왜 했니?라고 당장에 반문하고 싶어 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남이면 기대지 말았어야지, 도움받지 말았어야지 하면서 줄줄이 원망을 끌어다 놓고 싶은 것을 꾹 참은 것도 나만 아는 사실이다. 어쩌면 남편이 말한 의도를 알면서도 땡깡 부려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람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가 가장 멀어서, 머리로 이해해도 마음으로 서운할 수 있다는 걸 돌려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속 깊은 남편은 알 것이다. 내가 그랬었다는 것을.


가장 가까운 남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반면에 양보하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는 가끔 포용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분법적인 이야기로 남이니까 여기까지만 이라고 선을 긋는 게 그 가까운 이에게는 잘 안된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그 누구도 결혼, 배우자, 타인, 가족 등 분명히 나뉘어지긴 하지만 딱 잘라 나누기 애매한 주제들을 한데 묶어 잘 이야기하지 않나 보다. 어쩌면 이 모든 기준은 사람마다가 다 달라서 공감하는 영역이 아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치 식성처럼 고유한 생각의 범주가 있는데 그 기준이 모두 다 다른 것, 누군가에게는 조금 과하다 싶은 가족의 기준이 누군가에겐 그쯤이야 뭘 할 수 있는 정도인 그런 모호한 것.


오늘도 가장 가까운 남과 사는 많은 사람들은 매 순간 함께해서 즐거움을 느끼다가도 어느 한순간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불같이 성질을 부리며 부대낌의 시간을 보낸다. 그 모든 것이 가족을 지탱하는 근간이기에 피할 수가 없다. 나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현실 앞에 나만의 가족을 꾸리는 다양한 채도의 색깔을 고르고 입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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