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해 먹고사는 일

by 예나

어렴풋한 기억에 엄마의 어렸을 때 꿈이 여행 가이드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일평생을 가정주부라는 타이틀로 살았지만 그 중간중간에 참 다양한 것들을 배웠었다. 한때는 에어로빅 강사이기도 했고 어느 땐가는 도배를 배우더니 자격시험까지 보지를 않나, 결국엔 제빵학원까지 섭렵하고... 어릴 적 겨울 옷은 엄마가 뜨개질로 만들어 준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렇게나 활동적이고 손재주 많은 우리 엄마도 재미없어하는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부엌살림, 특히 요리이다. 어릴 때야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세상의 전부처럼 알고 지내니 그 정도의 차이를 모르다가, 바깥 음식을 사 먹는 일이 늘어나고 내가 밥을 지어먹을 정도의 나이가 되니 엄마가 그간 요리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무던히도 애써서 만들어 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겸하던 주부이던 때 나는 요리를 자주 하지 않았었다.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아주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제외하고는 파는 것이 더 맛있고 효율적이면 그것을 택했다. 굳이 몇 시간씩을 들여 찌고 삶고 굽고 하는 즉, 먹는 것보다 만드는데 몇 배의 시간을 요구하는 요리들은 사 먹는 게 현명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놓여진 환경이 바뀌어 밥해먹는 일이 나의 주업이 된 지금,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 내가 사는 미국의 소도시는 대학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곳이라 특출 난 맛집이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국인들의 입맛이 다채롭거나 예민하지 않아서인지 맛있는 집을 찾기도 힘들다.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은 아니라, 대충의 채소와 고기들의 물가를 아는 나는 이제 우리네 엄마들처럼 '이 돈이면 집에서 얼마나 푸짐하게 잘 차려먹을 수 있는데...' 하는 푸념을 하고 있다.


단순한 한식을 시작으로 유린기나 피자, 치킨, 짜장면도 이제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대단한 요리를 만들었다는 성취감보다는, 한국에선 늘 사 먹는 게 당연했던 메뉴들을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의 지배력에 감탄한다. 역시 사람은 닥치면 대부분 다 하게 되더라. 경험해 보니 그렇다. 요리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것 또한 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을 다분히 반영하는지라 각자에게 맞는 방법과 길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요리법을 알려주는 수많은 경로들 중에서 나와 맞는 길을 찾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양념을 만들고 맛을 돋워주는 꿀팁 같은 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칼을 쓰는 일과 불을 조절하는 것이 요리의 기본기임을 천천히 익히는 중이다.


어렸을 때 막내이다 보니 끼니때마다 식탁보를 깔고 수저를 놓는 일, 그릇에 놓인 반찬을 식탁에 놓는 일 정도는 전담으로 했었다. 아무래도 언니들보다야 부엌에서 엄마 곁을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고,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요리를 즐겨하지 않았던 그때의 엄마 속내를 알 길은 없지만, 잘하든 못하든 엄마는 꾸준히 식사를 차렸고 우리 식구들은 그 밥을 먹고 일상을 지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밥 해 먹고사는 일이 누군가에겐 재미를 겸비한 특별한 일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겐 루틴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 닿든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먹을 끼니를 지어먹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활의 결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어른이 되면 자기 손으로 돈을 벌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말들을 내뱉지만, 누구도 스스로 먹을 밥을 지어먹으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는 좀 다르다. 매일 밥을 꼭 지어먹으시라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밥을 지을 줄 아는 능력은 갖추고 있는 게 어른됨의 기본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할 줄 안다는 것과 그 반대의 차이는 크다. 문만 열고 나가면 사 먹을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간편식 조차 너무 잘 나오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낼 줄 알지만 사 먹는 사람이 조금 더 매력 있다. 사 먹다가 가끔은 시간 내어 끼니를 만들어 먹는 사람은 마치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다가 어느 하루 하늘이 너무 맑고 바람 좋은 날에 자전거를 꺼내 들고 출근할 줄 아는 낭만을 가진 사람과 같다고나 할까? 모두가 이렇게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 배우자가 먹을 끼니를 만들고 먹고 치운다. 이 과정이 어느샌가 몸에 배어 내 것이 되면 어른의 나이로 살아가는 기나긴 인생에서 조금은 낭만적인 무언가를 잃지 않고 있다는 자족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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