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해외이사를 통해 살림살이를 보내 놓고 내가 먼저 도착한 이 곳 남편의 기숙사에 있는 부엌살림이라곤 한 개인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이 전부였다. 수저 두 개, 접시 5개 남짓, 냄비와 프라이팬 각각 1개 등. 이 외에 가구라고 해 봐야 1인용 매트리스와 식탁 겸 책상 하나 의자 둘 이게 전부였으니, 빌트인 된 가전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둘이 살기 시작한 공간에서 적어도 두 끼 정도의 식사는 당장부터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기에 소꿉놀이 같던 그 도구들을 십분 활용해서 이것저것 요리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부엌환경은 아니었지만 참 신기했던 것이 절대적으로 적은 가짓수의 물건으로도 큰 불편 없이 무언가를 척척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지금껏 오랜 기간 직장인으로 지내면서 살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주 하지 않는 요리라도 한국에서만큼은 다양한 그릇과 용도별 프라이팬, 크고 작은 주걱 뒤집개 등 살림 시간에 비해 수많은 도구들과 함께 했었다. 아무것도 없이 몸만 이 공간에 내던져졌던 그때, 매일 두 끼 정도의 요리를 하고 설거지와 갖은 살림을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많이 하고 있었다. 그 많던 한국에서의 도구들이 없는 채로.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던 옛 말이 참 틀린 게 없는 것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내가 살림을?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하다 보니 그릇 수가 조금 부족한 것 말고는 전혀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되려 적게 가지고 있어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할 수 있고, 하나를 온전히 써내는 즐거움도 덤으로 맛보는 묘한 희열도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때 알았다. 살아가는 데 물건이 정말로 많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그저 내 욕심이 필요라는 이름을 앞세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고, 기어코 사들여야 만족하는 내 어리석음이었구나. 함께 사는 사람은 항상 나에게 이야기했다. 물건이 너무 많아. 선택하는데 고민이 생기겠어. 그저 농담처럼 지나는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진심으로 들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번뜩 알아차렸다. 내가 가진 물건들의 종류와 양이 나의 필요를 넘어섰다는 것을.
미니멀 라이프라는 거창한 슬로건까지 내 세우며 기어코 집에 아무것도 들이지 않겠다 뭐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아니다. 다만 내 생활에 필요한 수준에서의 물건의 종류와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것은, 살아가면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초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곳에 와서 이렇다 할 내 책상 없이 매트리스에 앉아 이불과 배게를 둥둥 쌓아 올린데 노트북을 얹어두고 쓰는 글이 조금 불편한 정도였지, 시쳇말로 못해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다. 안 해봐서 몰랐던 거고, 지레 앞서 없으면 불편할 거라고 걱정하고 염려했다. 그래서 없어보지 않았던 물건이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사물을 탐했고 많이 사들였다. 물론 편리한 도구나 물건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분명히 기여하는 바가 있다. 다만 내가 느낀 건, 그 물건이 당장에 내게 없다고 해서 곧 죽을 만큼 불편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그저 조금 느리거나 번거로운 정도의 불편이더라는 것.
한국에서 옷을 줄이기 시작했을 때,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하루에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내 몸에 걸칠 수 있는 옷의 가짓수가 5~6개를 넘지 않는다. 한데 나는 재질별, 상황별, 색깔별 갖가지 구분법으로 외투와 니트와 청바지를 수도 없이 사들였다. 결국 그 모든 게 짐이었고, 나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두 다 알지 못했다. 부엌살림도 인생살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본다. 많아서 좋은 건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는 단 한 가지뿐.
경계하는 삶.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것이 삶의 패턴인지 내용물인지 항상 생각하고 선을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삶.
오늘, 전보다 훨씬 많아진 그릇들에 밥을 지으며 먹은 그릇들을 치우며 또 한 번 생각한 그런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