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이 마케팅이다: 한 달간 공짜 만두를 주는 식당

‘공짜’의 심리학

by 일상마케터

여름에 태어났지만 겨울을 좋아한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괜히 평소와 달라도 일단 나이 탓을 하게 된다.), 아니면 습도가 높아져서인지, 6월부터 불쾌지수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평양냉면 도장깨기 맛집 지도를 다시 펼쳐 들었고, 찬바람이 등장한 9월까지도 냉면 삼매경에 빠져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퇴근 시간도 안 됐는데, 목소리가 두 톤은 올라가 있었다. '로또 3등이라도 됐나?' 싶었지만, 뜻밖에도 우리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평양냉면집이 새로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아, 그때 망했던 족발집 자리에 들어서는구나' 생각하던 찰나, 남편의 한 마디가 이어졌다. “개업 기념으로 선착순 손만두가 무료래. 오늘 저녁은 냉면 먹자!


마케터인 나는 직감했다. ‘걸렸다, 공짜 마케팅.’ 사실 마케터도 피해 가기 어려운 게 바로 이 ‘공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식당 주인은 만두를 공짜로 주고도 남는 게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는다. 단, 잘 설계된 ‘의미 있는 공짜’여야 한다.


우선, 고객은 ‘공짜’라는 단어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멈춘다. 이를 마케팅 용어로 ‘제로 프라이스 효과(Zero Price Effect)’라고 부른다. 가격이 0원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심리적 저항을 내려놓고, ‘무조건 이득’이라는 감정적 판단을 한다. 예상치 못한 공짜는 기분 좋은 놀라움과 함께 브랜드에 대한 첫 인상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브랜드 관점에서도 공짜는 고객을 불러 모으는 미끼가 아니라,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는 ‘진입 장벽 제거’ 도구다. 한 달간 만두를 무료로 준다는 이벤트는 단순한 유입 이상의 효과를 낸다. 사람들은 SNS에 사진을 올리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공짜’는 그 자체로 바이럴 마케팅이 된다.


더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냉면을 먹으러 온 고객은 자연스럽게 만두도 먹는다. 그런데 그 만두가 의외로 맛있다? 평양냉면의 인상도 달라진다. 이건 단순한 덤이 아니라 ‘브랜드 체험 마케팅(Experiential Marketing)’의 대표적 사례다. 브랜드를 머리가 아닌 입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물론 아무렇게나 주면 안 된다. 무료 이벤트는 잘 설계돼야 한다. 우선, 기간을 명확히 설정해 희소성긴급성을 만들어야 한다. 무기한 공짜는 사람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또 하나, SNS 해시태그 이벤트나 후기 작성 이벤트처럼 고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초기에 쌓인 리뷰는 이후 방문자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중요한 ‘사회적 증거(Social Proof)’가 된다.


이런 전략을 잘 활용한 예로는 배달의민족의 첫 주문 무료 쿠폰이나, 올리브영의 샘플 증정 이벤트가 있다. 무료지만 품질 높은 경험을 통해 고객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이후 유료 전환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만, 무료 이벤트라고 해도 품질이 떨어지면 오히려 역효과다. 며칠 전 자주 가던 차돌삼합집에서 리뷰 이벤트를 하길래 참여했는데, 사은품으로 제공된 묵사발이 형편없었다. 묵사발 정말 좋아하는 음식인데.. 차돌삼합을 먹는 내내 아쉬움이 컸다.


결과적으로 리뷰는 썼지만, 마음속에서는 신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기대했던 것과 실제가 다를 때 발생하는 실망, 이건 ‘기대 불일치 효과(Expectation Disconfirmation Effect)’라고 불리는 심리다. 잘못 설계된 공짜는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먹는다.


결국, 공짜 이벤트는 단기적으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 설계되면 초기 고객 유입에 대한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장기적인 신뢰와 충성 고객이라는 큰 수확을 안겨준다.


우리는 예정대로 평양냉면을 시켰고, 만두를 서비스로 먹었다. 만두는 손만두였다. 실제로 판매를 하는 프리미엄 손만두를 무료로 먹으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고, 평양냉면도 유명한 평양냉면 맛집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다.


처음 던졌던 질문, “식당 주인은 만두를 공짜로 주고도 남는 게 있을까?”의 답은 명확하다. 잘 설계된 공짜는 충분히 남는다.


우리 동네 평양냉면집은 만두 이벤트 덕분에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렀고, 오픈 3개월 만에 줄 서는 맛집으로 등극했다.



제로 프라이스 효과 (Zero Price Effect)
가격이 0원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무조건 이득"이라고 느낀다.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작동하고, 판단은 느슨해진다. 공짜는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강력한 유인이다.


바이럴 마케팅 (Viral Marketing)
사람들은 좋았던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한다. SNS, 지인 추천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퍼지는 마케팅.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소문이 나는 이유다.


브랜드 체험 마케팅 (Experiential Marketing)
직접 써보게 하고, 느끼게 해야 진짜 내 브랜드가 된다. 무료 만두 한 입이 평양냉면집의 전체 인상을 좌우할 수 있는 이유다.


사회적 증거 (Social Proof)
다른 사람들이 먼저 경험했다는 사실은 큰 신뢰가 된다. 리뷰, 후기, SNS 게시물은 새로운 고객에게 강력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기대 불일치 효과 (Expectation Disconfirmation Effect)
기대했던 것과 실제 경험이 다르면 실망감이 크다. 설명 없이 올라간 가격, 부족한 품질은 단골을 잃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마케팅은 결국, 계산이 아니라 감정이다. 공짜 하나에도 고객은 기억하고, 실망 하나에도 떠난다. 잘 설계된 무료 한 접시는, 한 사람의 마음에 브랜드 전체를 각인시킨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3화팬덤을 만드는 브랜드 vs 사라지는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