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된다가 된다로 바뀌는 순간

정신차려보니 비행기에 있었다

by 일상마케터

기내 호출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바닥에는 식품 포장지와

기내용 짐가방이 널브러져 있었고,

기압 때문인지

베이비 침대에 누운 아기들이

하나둘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선배들이 “첫 비행 어디야?” 라고 물었을 때

내가 “모로우~코”라고 하자

그 묘했던 눈빛.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이륙 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로코 비행은 짧은 비행시간에 비해

기내 서비스는 복잡하고,

승객들의 요청도 많아 악명 높은 노선이었다.


경력직도 기피하는 비행을,

신입이 첫 비행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뤠이디스 앤 젠틀맨…’
멘탈이 탈탈 털리고 있을 때,

기장의 착륙 방송이 들렸다.

그제야 살았다는 안도감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비행생활 잘.. 할 수.. 있겠지?’




기자의 꿈을 접고 나니, 공허함이 몰려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일반 회사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천명 대 1의 공채를 뚫을 자신도 없었고,


언론사에서 잠깐 일하며,

나는 은근히 조직에 잘 맞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찾은 건 특수 직군.


그렇다고 고시처럼 오랜 준비가 필요한 길도

지쳐버린 내겐 맞지 않았다.


단기간 몰입으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동생의 한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언니, 영어 되잖아. 외항사 승무원 한 번 지원해봐.

내가 기출이랑 자료 정리해둔 거 줄게.”

(국내 항공사 승무원을 꿈꿨던 동생은

그때 한창 승무원 면접을 준비중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직업.
나의 10년 꿈이었던 기자라는 커리어가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는구나 싶었다.


경험주의자였던

나는 ‘일단 해보고 정하자.

고민만 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데드라인을 6개월로 정하고,

언론사 준비생에서 승무원 준비생으로 변신했다.


예상 밖으로 잘 맞았다.
무엇보다 스터디 그룹의 분위기가 달랐다.

언론사 스터디에서는

비평과 격렬한 토론이 필수였지만,


승무원 스터디에서는

칭찬과 격려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미소 진짜 좋아요.”
“방금 답변 자연스러웠어요.”


칭찬 속에서 오가는

단점 피드백은 오히려 수월하게 받아들여졌다.


메이크업이라곤 선크림 하나 바르는 나에게

뷰티 노하우가 오가는 대화도 신세계였다.


“이 제품 쓰면 면접 때 얼굴이 화사해져.”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기질은 강점이 되었다.
늘 예민해서

사회생활에 에너지를 뺏겨 쉽게 지친곤 했는데

서비스직에서는 그게 장점으로 발휘되었다.


상대의 감정을 읽고, 무엇을 원할지 빠르게 파악하는 건

예민한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방황하며 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전부 자산이 되었다.
와인 샵 매니저, 방과후 중국어 교사, 일식집 아르바이트, 언론사 인턴.
그 모든 경험이 면접의 에피소드가 되어주었다.

나는 절벽 끝에 선 심정으로 승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30대의 시작선에서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절실함.


그리고 기회가 왔다.
메이저 글로벌 항공사에서

대규모 채용 공고가 난 것이다.

‘이건 내 인생의 기회다. 잡아야 한다.’


전형은 네 단계.
1차 이미지 체크·스몰토크 → 2차 필기·토론 → 3차 화상 면접 → 1:2 파이널 심층면접 .

1, 2차는 내가 그동안 쌓은 면접 노하우와 영어 회화로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할 때는 표정이 항상 죽상이었는데,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웃으며

긍정적인 생각을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심층 면접인, 3차, 파이널 면접이었다.


다행히 운도 따랐다.
신설된 3차 면접 덕에

2차를 마치고 준비 기간이 한 달 더 주어진 것이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중얼거림으로 채웠다.


지하철에서도, 산책길에서도,

엄마 앞에서도, 동생과 모의 면접을 하면서도.


거울 앞에서, 화장실에서, 누워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답변을 외웠다.


하도 반복하다 보니,

준비하지 않은 질문에도

준비한 답변을 응용해 대응할 수 있었다.


드디어 파이널 면접 전날 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것만 잘하면 드디어 승무원이 되는구나,

그런데..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준비할 수 있을까?’


나락으로 가려는 마음을 꾸역꾸역 잡아

다시 긍정적인 생각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 할 만큼 했다. 이제는 운이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파이널 면접을 마친 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굳게 붙잡고

발표 날을 기다렸다.


발표날 메일을 열었을 때,
‘축하합니다’ 문구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했다.


그 순간의 감정은

기쁨을 넘어,

치유였다.


포기하지 않고

가다보면

또 기회는 찾아온다는 것.


하늘이 건네준 위로였다.


외항사 승무원은

내게 직업을 넘어,

새로운 삶을 사는 기회였다.

부모님과 멀어진 거리를 좁혀주었고,

동생과의 관계를 깊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방황과 도전 속에서

처음으로 위로의 순간이었고,

인생의 숨고르기하는 시기였다.


그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내게 운좋게 찾아와줬다.


그랬기에 이후 마주한 시련과 고통도

다시 버틸 수 있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빛나는 인턴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