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비행생활 에피소드 1
“아이고, 할머니… 제발요.”
긴박했다.
교육 시간에 받았던 하이재킹 시나리오보다도 더.
나는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도착하면 밀라노 미술관도 가고, 쇼핑도 해야지…’
오랜만에 여유로운 비행이 될 거라 믿었던 내가, 순진했다.
비교적 ‘편안한 노선’이라 불리던 밀라노 비행은,
한 할머니의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악몽이 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한 할머니가 이륙 직후,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문쪽으로 달려가셨다.
출입구 손잡이를 붙잡고
“문 좀 열어달라”며 손잡이를 움직이고 계셨다.
(그때 할머니가 정말 문을 여셨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부사무장님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문을 막아서며 내게 눈짓을 했다.
‘빨리 진정시켜.’
나는 갸날픈 할머니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내 몸에 무게를 실어, 마치 백허그하듯이 할머니를 안으며 말했다.
“할머니, 제발요… 지금은 나가실 수 없어요.
지금 1만 미터 고도예요. 나가면 다 죽어요. 제발요…”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답답해서 나 좀 나가야겠다”를 반복하셨다.
나는 그때,
계속해서 ‘나가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할머니가 공황발작을 겪고 계셨다는 걸.
8~9년 전만 해도
공황발작이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은 지금만큼 많지 않았다.
그때의 승무원들은 모두 할머니를 ‘이상한 승객’으로만 보고
문을 열지 못하도록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심호흡을 함께 해드리며
“괜찮아요”라고 말해드렸다면
조금은 더 안정되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착륙했을 때 승객과 승무원 모두
‘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날이 마음에 남는다.
할머니께 죄송하다.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몰라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에는 ‘몰랐어, 미안해’라는 말을 쉽게 했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이니 이제는 아는 것의 무게감을 느낀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불편을 줄 수도 있고,
시간을 망칠 수도 있고, 때로는 생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렇게 ‘모른다는 것’의 무게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