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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첫 창업을 동업하게 됐다

by 일상마케터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서른이 넘으면서 시간은 점점 더 귀해졌다.


외항사 승무원은 내 적성에 잘 맞는 일이었지만,
‘이 일을 평생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타고난 유리 체력이 문제였다.


운동을 병행해도 몸이 버거웠고,

불규칙한 수면은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계속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이상하게도, 적성에는 맞지만
‘노력이 많이 필요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 불안하게 했다.


승무원으로 일하며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는 성취지향적인 사람이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조금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비로소 보람과 에너지가 생겼다.


그런데 승무원 업무는,
내가 타고난 기질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노력하지 않아도

머물게 될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웠다.

승무원이 된 건 내게 행운이자, 전환점이었다.

그 일을 통해 일의 자세를 배웠고,
삶의 좋은 습관을 몸으로 익혔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오지 국가에도 발을 디뎠다.


어릴 땐 무섭기만 하던 비행기가
이젠 내 일터가 되었고,
그 복잡하고 육중한 공간이 낯설지 않게 된 덕분에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덜 두려워졌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이제, 나는 또 무엇을 하며 살지?’


그때 또 한 번, 인생의 우연이 찾아왔다.
아주 작은 우연이었지만
그건 결국 내 인생의 커다란 나비효과가 되었다.


휴가차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커리어 고민을 하며 지인들과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마케팅 회사 대표님이 말했다.

“기업 대상 마케팅 툴을 만드는 회사를 같이 해보면 어때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대표님, 저는 문과라… IT는 잘 몰라요.”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표님은 이어 말했다.

“OO씨, 언론사 다녔잖아요. 이 플랫폼엔 콘텐츠가 중요해요.
인터뷰나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표직도 맡아주세요.”


회사 생활 경험도 많지 않은 내가 ‘대표’라니.
당황스러웠지만, 묘하게 설레었다.


‘30대 대표라니, 멋있다.’


그 제안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정부가 여성 창업자,

청년 창업가를 적극 지원하던 시기였다.


“이왕 도전할 거면, 지원금을 받아서 해보자”는 말에
나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정 지분과 급여를 보장받고,

동업 계약서를 체결했다.


내 주요 역할은 플랫폼 매거진의 콘텐츠 편집장이자
투자 및 정부 지원금 유치 담당자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분이었다.


나를 이용하거나 속일 수도 있었지만,
그분은 내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주셨다.

창업에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계약서를 직접 써주고,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주셨다.


그렇게 나는 30대 초반,

첫 번째 대표가 되었다.


물론, 예상했겠지만,

그 뒤로 모든 게 장밋빛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배운 ‘한계효용의 법칙’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행운이 있으면 불행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그리고 내 성격까지 바꿔놓을
거대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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