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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런던 비행기에서 만난 최고의 리더

슬기로운 비행생활 에피소드 2

by 일상마케터

영웅은 난세에 나타난다더니—

그 말이 꼭 그날의 부사무장님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우리 항공사에서 악명 높은 노선 중 하나, 런던행 비행.
짧은 비행시간에 복잡한 서비스,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요청.


첫 런던 비행이라 출발 전부터 잔뜩 긴장했다.
‘이번엔 그냥, 나 죽었다 생각하고 버티자.’


비행 전 브리핑룸.

부사무장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런던 비행, 다들 알죠? 쉽진 않아요.
그래도 우리 오늘 Be nice하게 해봐요.

그럼 분명 좋은 비행이 될 거예요.”


그때는 몰랐다.
그 한마디 Be nice의 의미를.


이륙 후,

부사무장님의 리더십은 금세 드러났다.


급하지 않지만 빠른 손동작,
과하지 않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 보이는 승무원을 먼저 찾아가

말 한마디를 건네고 손을 보태주셨다.


부사무장님이 지난 자리는 공기가 달라졌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이 구역은 제가 도와드릴게요.”


다정한 말들이 퍼지며

팀 전체 분위기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날 우리는 어벤져스였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메워줬다.


터프한 런던행 비행이었지만,
업무 강도는 평소보다 덜하게 느껴졌다.


중거리 비행이었는데도,

누구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모두가 말했다.
“와, 우리 지금 진짜 런던 비행 맞아?”


훗날 런던행 비행을 몇 번 했는데,
항상 이날이 그리웠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든 거였구나.


무슨 일을 하는게 중요하기보다

누구랑 하는게 더 중요하구나.

그날 처음 깨달았다.


며칠 뒤,

회사 메일로 칭찬 레터가 도착했다.


런던 비행 승무원 전원이 받은 거 같았다.


부사무장님 덕분에 잘해낸 일이었는데,
그분은 공을 우리 팀에게 돌리며

직접 칭찬레터를 작성해 제출하셨다.
(그건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나도 이런 리더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만 잘하는 리더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싶은 리더


부사무장님의 리더십은

책으로 배운 어떤 이론보다 현실적이고, 멋있었다.


단 한 번의 비행이었지만,
그분은 내게 리더십과 팀워크의 씨앗을 뿌려준 최고의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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