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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May 15. 2022

산타 할아버지 (6)(완결)

  종이인형

  조용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그제야 머리맡에 놓인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손잡이 부분에 매듭이 묶인 검정 비닐봉투였다. 어찌나 오랫동안 품에 안고 다녔는지 봉투는 여기저기 잔뜩 구겨져 있었다. 매듭을 풀어 안을 확인하니 할아버지와 다툼의 이유였던 종이인형이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무게는 가벼웠지만 개수는 많아 침대를 빼곡히 채우고도 세 장이나 남을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종이인형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선물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물을, 그것도 산타가 아닌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미어지는 묘한 감정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지만 밤중에 몰래 찾아와 산타 할아버지의 행세를 한 할아버지의 깜짝 선물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비밀을 가슴 깊숙이 간직한 채로 행복에 젖어있다 단잠에 들었다.


  산타 할아버지

  크리스마스의 아침은 평소와 같았다. 식탁 앞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내 손에 들린 종이인형을 힐끔 보더니 “그건 어디서 난 거냐?” 라고 물었다. 동그랗게 뜬 눈에는 궁금증이 가득했다.


  자고 일어나니까 머리맡에 있던데요?

  땅에서 솟았나?

  할아버지가 준 거 아니에요?

  내가 미쳤다고 계집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걸 사줘?

  이상한데…. 그럼 누가 준 거지?

  그 샨티인지 산타인지 하는 썩을 놈이 준 거겠지. 어제가 선물 주는 날이었다며?


나는 할아버지의 태연함에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할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숟가락을 들고는 국을 한 모금 마시더니 “밥이나 먹어라.” 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어깨를 으쓱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면 산타 할아버지지가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할아버지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한층 더 커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할아버지와 책을 읽거나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같이 책을 읽을 때는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내가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 때에는 항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한번은 너무 오래 가지고 놀면 여자가 될 수도 있으니 하루에 한 시간만 가지고 놀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지만 겁에 질린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한 시간 이내로만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여기까지가 할아버지와 보낸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다. 집으로 돌아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골목에서 박스를 줍던 할아버지를 보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를 배려해서인지 부모님은 나에게 할아버지가 멀리 여행을 갔다며 말을 대신했고 장례를 치르는 며칠 동안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어려도 알 건 다 아는데. 나는 들고 갔던 종이인형이 다 젖어 때까지 며칠을 펑펑 울었다.

  부모님과 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랬고 다행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는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학교 선생님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그해 크리스마스에 바라던 운동화가 아닌 문제집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인정하게 됐다.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쓰기 시작한 단편이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스스로의 게으름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ㅎㅎ

참 쓰면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들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몰라요.

이번 제목이 산타할아버지라 그런지 산 할아버지 노래가 자꾸 떠오르는데 평범한 노래에서 그치는 게 아닌,

산 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나비같이 훨훨 날아서~ 벌처럼 쏴라. 이런 거요.

덕분에 카페에서 혼자 글을 쓰다 혼자 어찌나 바보처럼 킥킥거렸는지 몰라요.

이번 편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로 위안을 얻어봅니다.


이사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최근에 또 이사를 하게 됐어요. 서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답니다.

이곳은 음.. 처음 며칠은 여행 같았고 지금은 여느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외진 곳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런 건가 싶어요.

연고도 없는 타지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사람 사는 곳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대책없는 자신감을 가져봅니다.

그럼 다음 작품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 - 가능성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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