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용기는 없지만 살고 싶지는 않았던 그 시절

지금 이 순간 여행 그리고 명상

by 라온제나







"살고 싶지 않아"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정확히 어떤 심정에 나온 말인지 이제는 너무 흐릿해져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그 말에 당황하며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그런 말을 하면 나는 뭐가 되냐고 반문했던 그의 표정은 선명히 기억난다.

내 마음 추스를 새도 없이 상처 받았다는 그를 안심시키려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방금 한 말은 생각 없이 한 말이라고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껍데기만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항상 밝고 착한 이미지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나는 역경과 고난 없이 자라온 긍정적인 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꽤 큰 심적 타격을 받았음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힘들지만, 이건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니야.'라고.

그렇게 가면을 쓰고 있으면 편했다. 아무도 나의 치부를 모를 테니 안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꽤 오래 하늘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 옛날 김삿갓 선생이 왜 삿갓을 쓰고 다니셨는지 감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표현했던 윤동주 시인도 왜 하늘을 언급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상생활을 하며 나를 스치는 많은 사람들은 내 표정만 보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눈물이 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햇빛이 자꾸 나를 향해 비추는 것 같아 모자도 없는데 작은 손으로 하늘을 가려보려 애썼다.


손은 너무 작은데 가리고 싶은 내 마음은 너무나 컸다.

길을 걸을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최대한 빨리 길을 걸었다. 그리고 반지하인 내 원룸 방에 쑥 들어가 문을 닫고 불도 키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작고 어두운 공간에 웅크려 하염없이 울었다. 반지하라 빛이 잘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그 더운 여름에도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하늘이 빛을 시켜 좁은 창문 사이로 들어가 나를 찾아보라고 한 것만 같아서.


그 시절 나는 어떻게든 숨고 싶었다. 어디든 파묻혀 버리고 싶었다. 죽을 용기는 없지만 살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여전히 푸르게 존재한다.

내 마음이 그랬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꽤 흐르고 이제는 과거의 내 마음을 이렇게 담담하게 쓸 수 있게 된 지금,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알고 하늘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던 자신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도 이런 마음이 든 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졌으니 말이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







18년 02월 26일
[여행하며 쓴 일기]



우연히 다시 그때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예전만큼 피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 돼버렸다.

지금 다시 보니 너무 앳되고 밝고 통통한 내가 있었다.

저 모습 안에 꼬깃꼬깃 숨겼던 그 마음이 전해져 버릴까 사진 보는 걸 그만뒀다.


힘들었던 순간들은 항상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찍었던 또는 찍혔던 사진들 속의 나는 밝게 웃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워 보여 마음이 아플 때가 있었다.

그러나 또한 이상하게도 지나고 나서 보면 그때의 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순간은 절대 몰랐다. 내가 그렇게 예쁜 존재인지를

그 순간의 나는 여전히 나의 못나고 낮은 자존감만 들춰내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아 내가 저렇게 예뻤구나 아름다운 순간이었구나’를 느끼게 되면 괜스레 울컥해졌다.

순간순간을 느끼고 온전히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일상을 탈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 나는 여전히 그 일상 속에 있다.

환경만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하다.

근데 그게 그냥 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는 점이 나를 너무 붕 띄우지도 않고 너무 가라앉게 만들지도 않는다.

어린아이들처럼 마구 신나지도 않고 마구 기쁘지도 않고 마구 슬프지도 않다.

그냥 여전히 똑같다.


나의 진정한 휴식처를 발견하고 싶다.

그게 어디든 어느 순간이든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런 곳을 만나기를 바란다.